정세랑/민음사

 

 

   
▲ 하덕경 사서
평택시립 비전도서관

안은영. 흔한 듯 흔하지 않은 이응이 많이 들어가는 부드러운 이 이름을 들었을 때 머리 속에 힙합도 아닌 것이 민요도 아닌 묘하고 흥겨운 음악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이 소설이 원작인 드라마를 봤을 것이다. 

혹은 광기와 귀여움 사이의 어딘가 정유미의 표정이나 몸 개그가 떠오른다 해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도 드라마를 먼저 본 후 흥미가 생겨 책을 읽었으니까. 작가가 안은영을 소중히 여겨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굳이 알지 않아도 되지만, 주변 이야기를 안다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이니 일단 알아두자.

보건교사. 학창 시절의 정확한 명칭과 모습이 희미해진 그 곳에 안은영이 일하고 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에게는 다른 세상의 모습이 보인다. 거침없는 말투로 세상과 소통하는 비비탄 총과 장난감 검을 든 이상한 전사는 백색의 가운을 걸치고 있다. 

이 책은 멀쩡해보이진 않지만 현실에 발을 희미하게 두고 있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이다. 일하기 싫어하는 직장인, 사람들 등의 현실적인 묘사, 그리고 학교 지하에 신비한 공간이 있다거나, 싸우고 있는 거대한 단체가 있다거나 하는 비현실적인 사건이 섞여 책의 분위기는 묘하다. 

젤리라 불리는 이상한 것을 볼 수 있는 보건교사는 어딘가 수상한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젤리의 수가 늘어나면 사람들이 아프거나 불행해질 수 있다. 완전히 근절되지 않을 젤리의 수를 조절하며 만나는 사람들, 가끔은 사람이 아닌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권의 책이 끝나버린다. 이야기의 조각이 은영이라는 존재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구조다.

소년과 소녀의 첫사랑이나, 한문 선생님이자 은영의 고성능 배터리인 은표와의 데이트, 지독히 운 좋은 아이와 지독히 운 나쁜 아이, 은영의 판타지 같은 능력을 나쁜 일에 쓰려는 원어민 교사, 생물 교사에게 나타나는 이상한 오리 이야기, 유명한 아버지가 있는 적당히 유명한 아이돌 학생, 갑자기 은영에게 나타나는 그림자가 없는 동창생, 옴 붙는다는 관용구의 옴을 실제로 먹어 불운을 물리쳐 준다는 옴잡이 전학생, 언젠가 뉴스에서 화제가 되었던 내용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국사 교사, 돌풍 속에서 날아가려는 용에게 밝혀지는 비밀.

마치 수수깨끼 같은 전 단락은 각 단편의 내용을 느낌대로 정리한 것인데, 그럴 기회가 생긴다면 두 가지 정도 알고 싶은 것이 싶다. 하나는 당신의 감상평도 저 내용과 비슷한지 인상 깊게 느낀 부분이 달랐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드라마-소설 순으로 이 이야기를 접한 사람과 소설-드라마 순으로 이야기를 접한 사람의 각기 다른 반응이다.

현실인척 하는 뻔뻔한 환상의 세상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처음에 10페이지 까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라도 이내 빠지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이 소설이 정세랑 작가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었으면 한다. 언젠가 속편을 쓰겠다는 작가의 약속이 매우 기다려진다. 이 책이 재미있었다면, 평택시 올해의 책이었던 <목소리를 드릴게요> 역시 흥미로운 SF 단편집이라 추천한다. 별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단편집이지만 한 편이 끝날 때마다 그래서 주인공은 다음이 어떻게 되는데…, 하고 아쉬워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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