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행위는
그 자체가 ‘공공재’다

 

▲ 이현우 지부장
전국대학노조
평택대지부

‘공공’이란 사전적으로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는 것”을 정의한다.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빠짐없이 골고루 중요하다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진료와 의료행위 역시 물과 공기처럼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공공의 것’이다.

얼마 전 의사와 의대생들이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담보로 진료 거부, 국가고시 거부란 초유의 집단행동을 했다. 하지만 국가는 이에 대한 단호한 대처는커녕 그 행위를 묵인했고 심지어 면죄부까지 주고 말았다. 의사들의 집단진료 거부가 국민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한 까닭은 국민의 건강권을 담보로 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확산 시기에 최선봉에서 국민을 치료해야 할 의사들이 기득권에 기반 한 불법파업을 자행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원인과 입장이야 다를 수 있겠으나 ‘공공’의 개념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 가치를 위해 헌신해야 할 사람들이 할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의사의 윤리적 지침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일반 소시민이라면 의사들의 집단적 진료 거부, 의대생 국가시험 거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태다.

노동운동을 하는 나로서는 위의 사태는 자본논리가 팽배한 그 업계에서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이러한 행위가 용납될 수 있는 일인가? ‘노동조합법’에도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으로 직결되는 공항, 철도, 병원, 항공 사업은 ‘필수공익사업’, ‘필수유지업무’로 규정해 헌법으로도 보장하는 노동조합의 파업 등 쟁의행위 시에도 그 업무가 반드시 유지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의사의 진료 거부, 의대생 국가고시 거부행위에 대해 국가가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 대한 특권과 기득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실제 노동조합이 위 언급한 대로 공익시설을 점거했거나 일을 거부했다면 어땠을까? 해고는 물론이고 법에 따라 즉시 구속될 것이다. 공정하지도 않고, 법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필수공익시설의 점거만으로도 노동자들은 구속되는데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진료·의료행위 거부에 대해 국가는 왜 면죄부를 주는가? 법과 원칙이 상황에 따라 다른 기준과 잣대로 집행되니 공공의 개념은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의료행위는 그 자체가 ‘공공재’다. 여기서 민영과 공공의료를 구분 짓는 것은 옳지 않다. 민영의료의 자본논리를 인정하고 공공의료 확충이 대안이요, 방법인 양 당위성을 인정하는 방식은 더더욱 그렇다.

얼마 전 3월 13일 ‘정유엽과 함께 공공의료 한걸음 더’ 행진에 참여했다. 2020년 3월 17살이었던 고등학생 정유엽 군이 진료 거부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했다.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는 1주기 기념행진이었고 공공의료 확대와 공공성 침해행위인 진료 거부를 규탄한다는 내용이었다. 1년이 넘도록 가족과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하고 있으나 국가는 외면하고 있다. 진료 거부로 치료받지 못해 사망한 정유엽 군의 상황을, 공공의료시설 부족을 원인으로 보는 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만약 ‘공공’에 대한 인식이 있고 병원과 의사가 어떻게든 고故 정유엽 군이 병원을 방문했을 때 노력했다면 그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정 군의 아버지도 직장암 3기로 투병 중이다.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거름으로 ‘공공의료 확대’를 대안으로 요구하고, 더 이상 아들과 같은 죽음을 막고자 절규하는 그 아버지에게 국가는 조속히 화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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