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눈 구경할 수 있는 나라 매혹됐죠”

 

대학시절 선배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한국행 택한 新 한국인

 
“한국에서는 겨울에 눈(雪)이라는 것이 펑펑 내린단다. 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리더구나.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상하의 나라 태국에서 프릿사나(여·35, Pritsana)를 한국으로 이끈 것은 눈이었다. 한국에 먼저 날아간 대학 선배가 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프릿사나는 여전히 태국에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늘에서 비도 아니고 어떻게 솜털 같은 하얀 물질이 내릴 수 있을까? 그녀는 눈이 너무 보고 싶어서 대학을 졸업한 후 2002년 3월 한국으로 날아왔다. 곧바로 선문대학교 한국어교육원에 입학해 한국어를 배우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전국을 여행하며 한국의 문화와 관습, 역사를 배웠다.
그러나 그녀에게 한국어는 너무 어려웠다. 1년 한글 기초과정을 마치기도 전인 2002년 10월 10년 연상의 남편을 소개받고 열애하다가 결혼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할 수는 있었다. 그녀가 겨우 입을 열고 한국어로 더듬거릴 수 있게 되기까지는 4~5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함께 모시고 살았던 시어머니로부터 냉대도 많이 받았지만 남편이 언제나 방패가 되어주었다.
“신랑이 며느리는 참 착한 사람이라고 두둔하면서 시어머니에게 안마도 해 드리곤 했어요. 그래서 차츰 고부관계가 좋아졌지요. 시어머니는 벌써 6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한국생활 10년이 지나면서 프릿사나의 한국어 실력은 상당히 늘었다. 그렇지만 한국어는 여전히 그녀에게 넘기 어려운 벽이어서 처음 한국에 와서 1년만 한국어를 배우고 그만 둔 것을 종종 후회하기도 한다. “그 때 내가 1년 더 다니며 배우라고 했잖아” 함께 마주한 남편 신모(45) 씨는 부인의 한국어배우기에 더 열성적이다. 그러나 그녀는 당시 1천만 원이나 드는 수업료가 부담스러웠고, 송탄에서 시집을 살며 천안까지 버스로 통학하는 것도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자와 인터뷰를 위해 남편과 함께 눈 색깔과 같은 털모자가 달린 하얀 점퍼를 입고 외출하던 그날도 그녀가 몹시 좋아하는 눈이 내렸다. 눈을 동경했던 그녀지만 한국의 겨울 추위는 진저리를 칠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다. 다행히 요즘은 많이 적응해 견딜 만 하다고 한다.
자녀들이 때로는 언어 소통이 잘 안 되는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고 종종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뭘 가르쳐 주려고 하면 ‘엄마가 뭘 알아?’ 하는 식이에요. 그런데 내가 아이가 어려워하는 수학을 가르쳐 주니까 ‘엄마는 태국사람인데 어떻게 알았어?’ 하고 물으며 저를 다시 보더군요”
그녀는 대신 초등학교 3학년생인 큰 딸에게서 요즘 한글을 새롭게 배우는 등 서로 교사 역할을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약간 다르니까 가끔 왕따를 당하거나 놀림을 받기도 해요. 그래서 운동을 시켰더니 내성적인 성격이 많이 좋아졌어요”
대학시절 마케팅을 전공한 프릿사나는 한국말이 조금 늘면서 한국산업인력공단을 통해 태국어 통역으로 일하기도 했다. 주로 지역의 산업단지에 취업한 태국 노동자들과 사업주 사이에 의사소통을 도왔다. 고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평택보다 바로 이웃하고 있는 오산과 화성에 더 많단다.
지금 그녀는 경인교대 이중언어교원양성소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녀의 꿈은 계속 늘어날 태국 출신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위해 태국어 교사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통역도 잘 하고, 한국말도 더 잘 하고, 태국 근로자들도 잘 도와주고 싶어요”
고국에는 마지막으로 간 것이 4년 전이다. 항상 딸을 애타게 기다리는 노부모님이 보고 싶지만 항공료가 만만찮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프릿사나는 형편만 되면 방학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태국의 문화와 말을 가르쳐 주고 싶지만 아직은 마음뿐이다.
남편 신 씨는 “아이들과 셋이 가는데 왕복 항공료가 150만 원 정도 듭니다. 그것만 드나요. 가서 쓸 돈도 좀 갖고 가야 되잖아요. 또 시간적으로 겨울에는 구정이 있기 때문에 보내면 힘들었습니다”며 과거 아내가 3개월 정도 태국에 가 있었을 때 1주일이 지나니 혼자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고 진한 부부애를 과시했다.
한류바람이 태국에서 여전한 가운데 그녀도 가수 아이유의 열렬한 팬이다. 한류의 진원지에서 언제나 TV만 틀면 볼 수 있는 한국 드라마도 프릿사나를 즐겁게 한다. “제 인생이 드라마 같아요” 그녀가 뜬금없이 던지는 한 마디 말 속에 10년 동안의 한국생활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느끼게 했다.    

※다문화가족이란?
우리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 북한이탈주민(새터민), 외국인거주자 및 그들의 자녀들을 비차별적으로 부르는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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