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광주에는 울보이모가 있었습니다. 이모는 아주 이따금 만났는데 동생인 엄마 얼굴만 봐도 울고, 조카인 내 손만 잡아도 울고, 무슨 얘기만 해도 잘 울어서 우리는 광주 이모를 ‘눈물의 여왕’ 혹은 ‘울보이모’라고 불렀습니다. 

1989년도에 처음으로 혼자 기차를 타고 광주 이모네 집에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공부하느라 바빠서, 혹은 과일 장사하던 어머니가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우리가 광주까지 내려가는 일은 없었으니 광주 땅을 밟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광주에 도착해 물어물어 도착한 이모네 집은 광주 한복판인 충장로에 있었습니다. 시골에 살던 내가 처음 본 광주의 느낌은 평택보다 큰 도시라는 것, 그리고 대체로 평온하고 조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2년 전에 그곳에서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실제로 체감한 것은 그로부터도 십 수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풍문으로 들려오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소문이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골학교 여학생의 귀에까지 들어온 그 이야기는 너무나도 무서운 것이어서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혹은 말하기 좋아하는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로만 생각했지 단 한 번도 사실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설마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국민에게 총칼을 겨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요. 

현장에 있던 모두가 입을 굳게 닫아버리고 긴 시간이 흘렀어도 5.18민주화운동은 결코 묻히지 않았습니다. 잠잠하다 싶으면 뜬금없이 만화로 소개되었고, 한번 씩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었고, 이후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듯 불쑥불쑥 언급되며 회자되곤 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그 처참했던 일들을 영화로도 볼 수 있게 된 지금 내게도 그 사건은 소설가 한강이 쓴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통해 더 생생하게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체감되지 않았던 그 끔찍한 광경을 불과 30여년이 지난 지금 미얀마에서 생생하게 전해오는 뉴스를 통해 또 한 번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30여 년 전 광주에서와 같은 일들이 똑같이 재현되는 야만의 밑바닥을 생생히 목도하게 될 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소문으로만 들었던 광주의 만행을 재차 복기하는 것 같아 참혹한 만행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사망한 19세 소녀의 티셔츠 문구에 새겨진 ‘다 잘 될 거야’라는 글귀가 미얀마 국민의 간절함을 드러내는 것 같아 오늘도 마음이 타들어갑니다.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지금 이 순간도 미얀마에서는 폭력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고 생명이 죽어가고 있으니까요. 

미얀마 국민에 대한 독재 군부의 만행과 반인권적 탄압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군과 경찰의 폭력은 당장 중단되어야 합니다. 제재를 가하든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더 이상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전 세계가 목도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가 이어지는 한 지금의 야만은 계속 회자될 것이고 전 세계는 결코 지금의 야만적인 폭력행위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쓰는 이 순간에도 텔레비전에서, 인터넷 첫 화면에서 불현듯 마주치는 소식…, 아, 미얀마!!! 민주주의와 평화를 바라는 미얀마 국민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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