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다할 때까지 일할 터”

 

대대손손 현덕면 화양리 지켜와
경찰부터 행정사까지 쉼 없는 삶

 

 

“건강이 다할 때까지 일하면서 일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또 시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시집 한 권 내는 것이 제 개인적인 소망이죠”

 

대대로 지켜온 고향

유광수(81세) 행정사의 집안은 대대로 평택시 현덕면 화양리 696번지를 지켜왔다. 지금도 그는 대대로 물려온 집터를 지키고 있다.

학창 시절 동네에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왜소한 체격은 그에게 콤플렉스였다.

“몸이 왜소해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한데 성격은 또 까칠해서 친구들이 싸우면 가장 먼저 말리기 바빴죠. 근성이 있어 현덕초등학교 개교 이래 최초로 6년 개근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유광수 행정사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모두 수원에서 나왔다.

“당시는 농업이 한국 경제의 중심이었기에 집안의 장남으로서 농고에 진학했습니다. 반공 교육이 한창때일 때라 웅변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죠. 왜소한 체격을 극복하기 위해 유도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고향 평택으로 돌아오다

유광수 행정사는 고교 졸업 후 동생들을 위해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 제대와 동시에 경찰에 합격한 그는 돈을 벌어 대학에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집안 어르신들은 장손이 빨리 자리 잡기를 원했고, 결국 그는 이른 나이에 아내와 백년가약을 맺으며 대학의 꿈을 포기했다.

“1964년부터 76년까지 경찰로 근무했는데, 수원경찰서 전투경찰대와 수사과 형사계 등 주로 강력 현장에서 자주 일했습니다. 한데 갑작스레 교통경찰로 배치를 받게 됐고, 전임자가 저지른 잘못을 의심받게 되면서 사표를 내고 평택으로 내려왔습니다”

집에서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다짐한 유광수 행정사는 나고 자란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농사에 집중하며 살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로 동네일을 도맡게 됐습니다. 친구들은 싸운 뒤 저희 집을 찾아왔고, 저는 화해를 시켰죠.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경기도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전기가 들어오도록 한 일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에게 후배들이 찾아와 사모임을 조직할 것인데 고문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후배들이 결성한 친목회가 바로 ‘청심회’였습니다. 후배들의 부탁으로 안중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제가 고문을 맡게 됐죠. 한낱 놀고먹는 것밖에 안 될 것 같아서 일 년에 한번은 봉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청심회는 매년 쌀을 모아 기금을 만들고 경로잔치를 열었다. 매년 1000명에 가까운 어르신들이 청심회가 개최한 잔치에 찾아오곤 했는데, 이 경로잔치는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됐지만,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행정사의 삶

국도 38호선 포장공사가 진행될 당시 현장 총무과장을 맡기도 한 유광수 행정사는 공사가 모두 끝난 뒤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을 맡아 일하기 시작했다.

“수원에 있는 친구의 소개로 변호사 사무실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새벽에 일어나 농사를 짓고 버스에 올라타 출근하기를 10년 이상 지속했습니다. 1994년 변호사가 서울로 올라가면서 독립해 행정사 사무실을 차리게 됐죠”

1996년에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앞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그는 당시 평택에서 활동하던 행정사 중에서 가장 어린 편에 속했다.

“당시 지역 행정사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컴퓨터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선배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5년간 대한행정사협회 평택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죠”

유광수 행정사는 무엇보다 다른 이들이 해결하지 못한 일을 처리했을 때 상당한 보람을 느꼈다.

“한번은 군 복무 중 다쳐 장애를 얻었지만, 오랫동안 상이군경 대우를 못 받아 왔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서 들었습니다. 변호사에게 찾아가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죠. 행정심판을 제기하고 직접 병무청을 찾아가 증거를 찾았습니다. 이후 친구는 보훈대상자로 선정됐죠”

당시 어려운 사정에 사례를 하지 못한 친구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나며 아내에게 유언을 남겼고 그 아내가 찾아와 오래전 일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당시 사정이 어려워 제게 사례를 하지 못했는데, 꼭 사례를 해달라며 아내와 자식에게 부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짠한 일이었죠”

유광수 행정사는 시간이 날 때면 계속 시를 써서 이를 모아 시집 한 권 내는 것이 개인적인 소망이다. 손재주가 있어 직접 정원 가꾸기도 하는데, 대대손손 살아온 그의 집은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는 건강이 다할 때까지 사무실을 계속 운영할 생각이다. 지금도 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는 유광수 행정사의 열정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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