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재 강호보 널리 알릴 터”

 

집안의 역사 알고자 연구 시작
사양재 강호보 연구·번역 지속

 

 

“사양재 강호보 할아버지에 대한 연구 활동을 지속해 이분의 훌륭함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평택시 팽성읍 남산리에서 나고 자란 강호흔(65세) 사양재강호보연구소장은 300년을 집안 대대로 이곳에 살아왔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개구리를 잡아 엿과 바꿔먹거나, 훈련 나온 미군에게 껌이나 초콜릿을 얻어먹곤 했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6학년 때부터 갑자기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평택중·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죠”

고등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강호흔 소장은 고3 시절 육사에 지원해 당당히 합격하기도 했다.

“제가 당시 육사에 들어갔으면 37기 정도 됐을 것입니다. 한데 아버지의 만류로 결국 입학을 포기했죠”

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그는 선배의 권유로 아주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장학생으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학비를 들이지 않고 수석으로 졸업을 했죠. 처음에는 삼성전자 컴퓨터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IT 업계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한 강호흔 소장은 세계 각국을 돌며 선진기술을 들여오고 새로 개발하는 일을 지속했다.

“지금도 IT 서비스 유통 사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쌓아온 능력이 사양재 강호보와 그 형제의 대를 이어온 진주 강 씨 집안 가계를 연구하는 데 큰 힘이 됐죠”

 

집안 뿌리를 찾아서

강호흔 소장은 어린 시절 집안 역사나, 사양재 강호보 등 선조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제 나이 마흔쯤 돌아가셨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집안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장남으로서 집안의 역사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집안 역사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먼저 한 일은 가보로 내려져 온 포도그림에 적힌 한자를 해석하는 일이었다.

“고교 은사님을 찾아가 한문 풀이를 부탁드렸습니다. 은사님 덕분에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됐는데, 그곳에 강호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어요. 이때 사양재 강호보라는 인물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이때부터 컴퓨터 문서를 활용해 집안의 족보를 정리했고, <나의 인터넷 한글전자족보와 뿌리를 찾아>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이 빛을 발한 것일까 강호흔 소장은 9년 전 한 학자로부터 사양재 강호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당시 연락이 와 알고 보니 학계에서는 이미 사양재 강호보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돼 있었습니다. 80여 명의 학자가 이분을 연구해왔던 것이었죠”

그는 이후 사양재 강호보 직계손을 찾기도 했다. 강호보의 동생, 강연보의 직계손으로 평택 팽성지역에 대를 이어 살아온 강호흔 소장 집안이 대대로 사양재 강호보의 묘를 관리해왔고, 이 묘에 대한 사실을 직계손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께서 직접 지도를 그려놓으셔서 묘의 위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직계손을 찾기 위해 4~5년간 족보에 나온 주소지를 돌아다녔죠. 그러던 중 5년 전쯤 우연히 직계손을 찾았고 지속해서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사양재 강호보

강호흔 소장은 작년 사양재 강호보 연행일기 <상봉록>을 현대화한 <1727년 사양재 강호보 상봉녹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과정에서 잘 못 불려왔던 그의 본래 이름을 되찾기도 했다.

“사실 학계에서 강호부로 불려왔는데, 사양재 강호보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한문본을 해석한 <상봉녹> 언해본에서 ‘강호보’라는 이름을 찾았고, 이를 학자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는 사양재 강호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가 누구보다 효심이 깊고 인문학적 소양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호보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동생과 함께 진사했지만, 고향에 남아 수학했고, 65세가 돼서야 어머니의 권유를 받아 다시 과거에 급제한 인물입니다. 당시 임금인 영조보다도 6살 많은 상태였죠. 그렇게 종1품 숭록대부까지 지내고 은퇴해 89세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강호흔 소장은 후대에 누군가 또 집안 역사를 연구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사양재 강호보와 가계를 연구하고 있다. 선조의 족적을 찾아 남겨놓으면 결국 쓸모 있는 근거자료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택시에 박물관이 건립된다면 집안 대대로 내려온 가보를 기증할 계획이라는 그는 앞으로도 사양재 강호보에 대한 연구와 번역 활동을 지속해 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후손으로서 학자들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강호흔 소장의 노력으로 사양재 강호보가 평택의 새로운 역사 인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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