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박물관, “지역민의 역사와
삶을 담아내야 존재 의미 있다”

 

지역만의 특수성과 국가적인 보편성 균형을 이뤄야
연구·전시·교육 유기적 연결, 조직과 전문 인력 필요
들·평야·바다·간척지·군사기지 등 평택을 특화시켜야
제도적인 부분 보완, 유물구입 등 긍정적 결과 기대

 

평택시가 평택박물관 건립을 위한 과정으로 오는 7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전심사평가 통과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평택시기자단이 주관하고, 평택시의회와 평택언론인클럽추진위원회가 후원하는 평택박물관 건립 관련 전문가 토론 ‘평택박물관 건립 왜 필요한가?’가 지난 5월 4일 평택시청 대회의실에서 개최됐다. 
김종호 평택시기자단 회장은 이날 “역사는 기억에서 시작된다. 개인의 역사는 족보로 이어지고, 과거 원시시대에는 동굴에 벽화를 그려 후손에게 전해졌다”며, “평택은 인구 50만을 넘어 대도시로 진입하고 있지만 타 시·군과 달리 지역의 기억과 유물을 보존하는 박물관이 없어 매우 안타까운 실정이다. 오늘 토론을 계기로 시민과 함께 하는 좋은 박물관이 건립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정장선 평택시장은 영상축사를 통해 “현재 평택시의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는 평택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이 사업은 평택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올해는 꼭 문체부 사전심사를 통과하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며, “심사를 통과하면 2024년에 박물관이 개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박물관은 평택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곳이므로 오늘 이 토론회가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선의 평택시의회 의장도 영상축사로 “시민의 생활수준 향상과 더불어 문화예술을 향한 시민 욕구도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토론회가 평택박물관 건립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짚어보는 유익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평택시사신문>은 이날 정숭환 뉴시스 경기남부취재본부 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포럼에서 대두된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지면에 싣고 시민과 함께 평택박물관 건립의 필요성과 향후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 정숭환 국장
뉴시스 경기남부취재본부

■ 정숭환 국장/뉴시스 경기남부취재본부
지방분권 시대에 평택시는 인구 50만 대도시로 진입하고 있다. 주한미군 이전과 함께 국제평화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평택시에 필요한 문화기반시설은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등이 있겠지만 오늘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평택박물관 건립에 대해 과연 박물관 건립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박물관이 들어서면 어떤 유물과 콘텐츠로 시민에게 다가갈 것인지, 운영은 어떻게 할 것인지, 시민을 위한 평택박물관의 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해보고자 한다. 

 

 

▲ 김경탁 학예사
평택시 문화예술과

■ 김경탁 학예사/평택시 문화예술과
평택박물관은 2016년 기본계획을 처음 수립했고, 2016년 12월에 부지 2만㎡를 확보했다. 평택박물관은 고덕국제신도시 중앙공원에 예술의전당, 도서관, 창의체험관이 함께 입지하게 된다. 면적은 2만㎡, 건축 연면적은 6500㎡로 계획하고 있다. 예산은 375억 정도이다. 2018년에 유물조사를 진행하고 2020년 1월에 사전평가를 신청했으나 보완해야 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평가는 크게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지는데 현재는 타당성과 건축기본계획, 용역을 진행 중이며 국가귀속 유물조사도 병행하며 보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결과를 받고 탈락 원인을 분석해 보니 제도적인 부분과 소장품, 전시기획에 문제점이 있었다. 신청 당시 조례가 부족해 작년부터 올해까지 수집조례를 진행했고, 건립자문위원회 조례도 보완하고 있다. 작년까지는 이 업무를 문화유산팀에서 진행했는데 문체부 사전평가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것이 실행력인 만큼 박물관시설팀에서 맡아 제도적인 부분이 구비됐다. 또한 당시 확보한 소장품은 400여점 이었는데 점수로는 충분했지만 가치나 확장성에 부족해 이번에는 유물구입을 진행하고 있다. 당시 유물을 보관하는 소장시설도 부족했는데 올해는 그 부분을 마무리했다. 소장품도 보완하고 전기기획에 관해서는 지역전문가뿐 아니라 외부전문가도 함께 전시기획을 구상하고 있다. 조금 더 준비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큰 틀에서는 세 가지 부분을 보완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과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 박성복 소장
평택학연구소

■ 박성복 소장/평택학연구소
지방자치제 이후 시·군 별로 최소 한두 개씩 박물관이 건립됐고, 문체부에서는 좀 더 특성화된 박물관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다. 평택은 인구가 54만인데도 박물관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역사박물관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큰 틀에서 제도는 갖췄지만 박물관이 그릇이라면 그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도 중요하다. 아직은 그런 준비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유물을 구입하고 있고, 기증이나 기탁유물도 최대한 빨리 확보해서 전시기획을 수립한다면 심사통과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평택은 인구가 54만 명이다. 그중 체험학습을 법적으로 해야 하는 계층이 9만 명인데 이들은 상·하반기로 나눠 체험학습을 하고, 1회 2만 원씩 교통비나 식비, 체험비 등을 사용한다. 그렇게 되면 1년에 36억 원을 투입되는데 지금까지는 대부분 관외에서 사용했다. 이 비용은 직접비용이고 간접비용으로 보면 60~70억 정도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 모두 사용되지는 않겠지만 15%만 수용해도 박물관 운영은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평택에는 다른 도시에 없는 것이 많다. 들과 산, 바다, 평야, 간척지는 물론이고 미군 군사기지가 전체 면적의 7~8%를 차지하고 평택항도 있다. 이것들을 특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특징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박물관 전시기법에서 평택만이 가진 지형들을 잘 활용하고 다른 지역에서 보지 못한 민속학적 부분과 산업적 부분을 찾아내면 두드러질 것이다. 삼남대로와 세곡을 거둬들이던 해창, 나루와 포구도 특화시키면 평택의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다. 

▲ 구본만 전. 관장
여주박물관

■ 구본만 전. 관장/여주박물관
박물관 구성요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여주박물관 건립 당시 중점적으로 했던 것은 국가귀속 유물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이것을 모으기 위해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수준의 그릇이 필요했으며 그것을 위해서는 신관 건립이 필요했다. 사료관 시절부터 꾸준히 기증·기탁 받은 유물들을 관람객에게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하면서 신관을 건립했다. 단순히 전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박물관 콘텐츠와 연계된 다양한 교육과 체험을 통해 얻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교육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쉴 수 있는 공간과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잘 준비하면 이후 운영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주박물관은 구관과 신관 합쳐서 3400㎡ 정도 된다. 평택이 6000㎡이상으로 계획하고 있으니 여주보다 두 배정도 될 것이다. 여주박물관이 구관이었을 때 연간 관람객은 3만 명 수준이었고 신관 건립 후에는 10만 명 이상이었다. 평택박물관은 연간 관람객이 12~15만 명은 와야 운영 상 문제가 없을 것이다. 
여주시에서도 국가지정, 도지정, 시지정 문화재가 있지만 대부분 비지정된 것들이 많아 박물관에서 자체적으로 조사를 한다. 학예연구 인력들이 조사한 것들은 문화재팀에서 먼저 시지정을 추진하거나 도지정 또는 국가지정으로 승격할 가치가 있다는 의견을 내고 학예 인력과 문화재팀이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한다. 평택시도 평택시와 박물관 학예사들이 협력해야 한다. 

▲ 양선아 박사
서울대 문화인류학

■ 양선아 박사/서울대 문화인류학
지역박물관은 단순히 국가나 중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의 역사와 삶을 담는 공간으로서의 지역박물관이 필요하고 그래야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역박물관은 기본적으로 그 특수성과 함께 국가사회 관점에서 봤을 때의 보편성을 함께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특수성에 매몰돼서도 안 되고 보편성에 매몰돼서도 안 된다. 박물관에서 전시와 교육이 원활히 진행되려면 기본적으로 연구기능이 있어서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연구로 기본 자료를 수집해 아카이빙 하고, 유물을 수집하고, 평택을 보여줄 수 있는 키워드와 테마 등을 찾아내서 심화연구를 진행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교육을 진행할 때 평택만의 지역박물관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 전시, 교육이 연결될 수 있는 조직이 갖춰져야 하고 전문 인력이 갖춰진 선순환 구조가 돼야 한다. 
안성천의 가로축과 경부선의 세로축이 평택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유물도 안성천을 따라 발굴되고 서해 쪽으로는 관방산성들이 분포해 있다. 하천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나루와 포구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안성천이라는 큰 줄기 속에 고대 유물부터 시작해 산성, 나루와 포구가 위치할 수 있고 안성천이라는 생활기반, 안성천을 통해 들이 펼쳐지고 어업활동이 시작됐고 간척이 이뤄졌다. 안성천이라는 큰 줄기 속에서 평택이라는 역사를 설명할 수 있다. 안성천을 하나의 큰 축으로 삼아 역사가 고대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경부선을 따라 올라가는 세로축은 20세기 이후다. 

▲ 김승겸 의원
평택시의회

■ 김승겸 의원/평택시의회
평택은 한자로 ‘평평할 평’ 자에 ‘못 택’ 자를 쓰고 있다. 고려시대 평택현에서 기원되었고 전체적인 역사는 구석기시대부터 3만 년이 넘었다. 고을이 시작된 것은 백제의 역사에서부터였고 현재의 서부역은 평택 근대도시의 원조다. 원평동은 지금도 행정동으로 부르고 있다. 1905년 1월 1일 경부선 철도가 개통하고 서부역을 중심으로 평택이 발전했다. 1914년 진위군 평택면 평택리가 설치된다. 1938년에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바뀌면서 지명이 평택으로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평택은 들과 물, 교통이 발달했고 특히 해상교통이 발달했다. 간척지가 많고 어렸을 때 새우젓배가 드나들던 기억도 난다. 1973년 평택호방조제가 준공되면서 농지가 확장되고 개발이 시작돼 갯벌이 사라졌다. 평택항과 산업단지 건설의 초석이 어업과 포구상업에서 힘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해군기지가 생기면서 군사도시로서의 이미지가 부각됐다. 
평택시의회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박물관 사료수집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5억 2000만 원이 사료수집이 기여할 수 있게 했고, 임시수장고와 관련해서도 2억 2000만 원을 수립해 올해 4월에 준공됐다. 시의회에서는 2019년도에 미군 주둔 70년을 담아서 한미역사연구회를 운영해 전문가들과 연구했고, 관련부서에서도 자료 아카이빙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평택시의회에서는 박물관 건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박물관 건립을 위한 조례 제정과 예산 부분에서도 힘을 싣겠다. 

■ 김경탁 학예사/평택시 문화예술과
사료수집의 경우 기증이나 기탁은 비용이 발생하지 않지만 구입하는 경우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기증할 때도 유상기증의 경우에는 비용이 발생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구입공고를 내고 예산을 세워 구입하고 있다. 사료수집 비용은 많을수록 좋지만 공고를 해도 충분히 응할지 모르기 때문에 예산책정이 어렵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사료수집에 힘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예산에서도 지금보다 증액이 되면 좋겠다. 평택의 사료는 크게 고대부터 조선시대 까지는 지역개발 과정에서 발굴 조사된 국가귀속유물이 대부분이고, 조선시대부터는 기록물이 남아 있으며 근현대 사진자료 등이 있다. 

■ 박성복 소장/평택학연구소
평택에는 아직 비지정문화재도 많다. 진위향교에는 궐패·전패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갖고 있다. 평택에는 민장 문서들도 많다. 민간서류와 공문서, 일제강점기 착취수단으로 쌀을 가져갔던 서료, 정도전 종중문서 등이 있다. 박물관이 없었을 때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현재 유물을 기증해달라고 요청하니 한두 분씩 기증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제 수장고를 만들고 있으니 기증유물이 확대되리라 예상된다. 또 안중읍 학현리에는 900년 된 은행나무가 있고, 원균 장군 유적 주변에는 500년 된 모과나무도 있다. 평택학연구소는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고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물관 운영과 문화재 관리를 위해서는 7~8명의 학예사가 필요하다. 그 중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위해서는 4명 이상의 학예사가 필요하다. 문화유산팀에도 1~2명, 평택에는 근현대음악관에도 임기제가 아닌 정식 공무원인 학예사를 채용해서 운용해야 한다. 
평택은 기본적으로 민중의 역사로 이뤄져 있다. 평택역은 일제강점기에 착취의 수단으로서 물류와 교통 여건을 갖추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저변에는 농경지의 곡물을 착취한 것이다. 평택은 간척의 역사도 빼놓을 수 없는데 조선후기의 간척,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연백 피난민 간척의 역사, 대청댐 등 수몰민 등 농업과 간척에 대한 특성화된 박물관이 만들어진다면 평택이 가장 유리하다고 본다. 


정리/임 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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