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을 재개정하고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 김기홍 위원장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고 이선호 군의 유족은 안중 백병원에서 아직도 이선호 군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빈소를 지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유력 정치인들이 다녀갔지만 앞으로 잘하겠다는 이야기일 뿐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사고 발생 이후에도 노동 현장에서 산재사망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평택캠퍼스 공장 건설 현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지난 6월 3일 아침 7시 30분경 평택시 고덕면의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캠퍼스 건설 현장,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는 이 현장에서 야광 조끼를 입고 도로 위에서 덤프트럭에 수신호를 주던 47세 남성이 뒤에서 오던 20톤 지게차의 거대한 바퀴에 깔렸다. 이미 심정지 상태, 그는 삼성물산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당 10만 원을 받는 일용직이었다. 지게차 기사 역시 삼성물산의 또 다른 협력업체 소속으로,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간주했다. 건설 현장 앞 도로 위에서 벌어진 사고라는 것이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고 이선호 군의 사고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위험한 업무가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외주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코로나19보다 산재사고로 더 많은 사람이 죽고 있는데, 기업은 비용 절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워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 나아가 위험한 일은 모두 비정규직에게 떠맡기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내자는 사회적 요구는 아주 쉽게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다. 더욱이 자본은 인력을 감원하고 업무 강도는 높여, 위험 속에 노동자들을 무방비 상태로 내몰고 있다. 구의역 김 군이 그랬고 태안화력발전 고 김용균이 그랬으며, 건설노동자 김태규가, 청년 장애인노동자 김재순이 그랬다. 스물세 살 이선호 군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노동자들의 목숨과 안전은 자본의 이윤보다, 기업의 이익보다 늘 뒷전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양산하는 위험의 외주화를 당장 막아야 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더욱더 인력을 충원할 수 있도록 우리가 모두 나서야 한다. 노동안전에 더 큰 비용을 쓰도록 해야 하고 안전을 신경 쓰며 천천히 일해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도 죽지 않게 우리가 바꿔야 한다. 또 다른 이선호가 더 이상 다치고 죽지 않도록,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일터를 바꿔나가야 한다. 이선호 군의 영혼이 외롭지 않게, 이선호 군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더 이상 노동현장에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바뀐 것은 없다.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로 한 해 2400여 명이 사망하고 있고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률은 21년째 1위를 이어가고 있다.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이뤄낸 경제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더 이상 이선호 군과 같은 죽음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재해를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즉, 원청이 위험을 하청 업체로 외주화하는 길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평택항뿐만 아니라 노동 현장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는 불법 도급과 불법 파견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재개정해야 한다. 지금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에나 시행된다. 그것도 50인 이하 사업장과 50억 원 이하 건설공사 사업장은 3년 후에나 시행된다. 더욱이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되지도 않는다. ‘산업안전법’ 위반 재발률은 무려 97%에 달하며 중대재해사업장 처벌 가운데 실제 실형이 선고된 비율이 0.4%밖에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업이 법 위반으로 내는 벌금은 평균 450만 원에 불과하다.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재사망 사고가 80%에 이른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재개정하고 시행령 속에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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