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 김윤숙 사무국장
평택시수어통역센터

개인적으로 나의 생일, 결혼기념일, 아이가 처음 빛을 본 날은 나에게 잊지 못할 가장 소중한 기념일이다. 기념일의 공통점은 처음과 시작 그리고 뿌리의 근원이 된다는 점이다. 6월에는 특별한 기념일이 있다. 농인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인식 개선과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 1997년부터 6월 3일 농아인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그 뿌리가 어느새 25년이라는 세월의 비바람을 맞고 청년의 나이가 됐다. 혈기왕성해야 할 청년의 나이, 비전을 향해 달려가야 할 나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다. 청년의 나이가 된 농아인의 날은 청춘이기 때문에 아파야 하는 것일까? 사회적 인식 개선과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 걸어왔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장애인으로 본다. 농인에 대한 인식은 물론 복지 발전의 속도는 여전히 느리고 사회에서 농인을 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기만 하다. 농인은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부모와 자녀와 친척과 이웃, 사회가 함께 살아간다. 농인 부모에게 청인 자녀가 태어나 소리의 자극을 받지 못한다면? 농인 자녀가 청인 부모와 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면? 소리의 장벽으로 취업의 선택 범위가 제한된다면? 노인이 되어 요양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농인을 단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만 볼 것인가? 농아인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시선을 바꿔보면 진정한 사회통합이란 듣지 않고 말을 하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곳에 가도 수어 정보를 받을 수 있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수어가 한국어로 변환되거나 한국어가 수어로 변환되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우리사회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농인을 위한 수어통역 또는 수어 정보 제공을 소수언어에 대한 지원 측면이 아니라 ‘장애인인권협약’ 측면에서 보고 있다. 즉, 농인을 위한 수어 제공은 농인이 인간으로서 가능성과 접근권과 같은 기본권을 침해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인권 기반의 접근방법이며, 농인의 언어 정체성을 보존하고 공공서비스에서의 수어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이다. 수어의 접근성을 높이면 삶의 질과 행복 지수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얼마 전 한국농아인협회 경기도협회 평택시지회는 농인과 청인이 영상으로 수어통역서비스를 지원받게 하기 위해 ‘QR코드 찍고! 수어통역!’ 스티커를 제작, 평택지역 관공서와 대형병원에 부착 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연령별로 진행되고 있지만, 농인들은 백신을 접종할 때마다 수어통역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평택지역 백신접종기관에 ‘QR코드 찍고! 수어통역!’ 스티커를 부착하면 장소와 상관없이 수어통역서비스를 지원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평택도시공사에서도 공영주차장을 이용할 때 농인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도록 수어영상스티커를 제작 중이다.

이러한 작은 변화의 물결이 잔잔하게 파도친다면 우리 일상 구석구석에서 수어로 소통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 아닌가? 농인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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