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과 번개로 만들어진 
소낙비 속에도 아름다운 향이 
배어 있다는 고운 심성으로 
오늘을 살아간다면 
세상 모든 소낙비가 향수처럼 
느껴 질 때도 있을 것 같다

 

   
▲ 권혁찬 전 회장
평택문인협회

포도밭에서 맞는 소나기는 포도향이 배어 있고. 길가 한 복판에서 만난 소나기는 참으로 거역 스럽게 소란 맞다. 그런데 우리는 수시로 소나길 만나며 살고 있는데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어가곤 한다.

그러나 넘겨야 할 것과 그렇지 못 한 것이 혼재한 현실에서의 소나기 피하기는 좀 경우가 다르다. 요즘 국지성 호우가 잦아지면서 때 아닌 우박까지 선보이는 소나기는 밉기도 하다. 이래저래 소나기는 피해 가야 할 순간의 역경 이다.

예고 없이 내리는 특성 때문일까? 그 양과 성질을 파악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쏟아지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주 급한 성질머리를 가진 괴팍한 비라서 그러할까?

그래도 대책 없이 소낙비를 흠뻑 맞아 본 사람이면 조금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피할 수 없을 땐 차라리 맞아 버리면 대안은 간단하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그리하여 흠뻑 젖은 몸뚱어리를 건사하다보면 평소에 알지 못했던 나의 소나기성 성품도 이해가 될 것이고, 내가 남에게 소낙비처럼 퍼 붓던 분노의 질책도 있었음을 돌이키게 될 것이다. 당하고만 있던 피해 의식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일 것이며, 스스로를 조절하고 절제 할 줄 아는 역량이 성장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포도 열매를 솎아내다가 느닷없이 소나기의 침략으로 흠뻑 젖어 들어온 아내가 아마 내 몸에서 포도향이 나지 않을까 라고 하던 말이 떠오른다. 포도송이가 매달린 상태에 따라 실한 알갱이만 남겨두고 지지부진한 알맹이는 솎아 내 주어야 전체 포도송이가 풍성하게 결실을 맺는다.

아쉽지만 따 내야만 하는 알갱이들을 생각하며 비우는 마음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송이들을 종이봉지로 곱게 싸 주어야 더욱 알차고 튼실한 하나의 포도송이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매우 의미심장한 작업 중에 맞닥뜨린 소낙비쯤이야 온몸이 흠뻑 젖으면 어떠하랴. 내가 맞은 이 소낙비로 인하여 성실하게 익어갈 포도송이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즐겁고 유쾌하여 마치 내 몸에서 포도향이 풍겨 나올 것 같다는 배려의 마음이 참으로 고귀하다.

이제 우리 소나기를 만나거든 흠씬 젖어 보기로 하자. 그리고 그 소낙비로 인하여 내 몸에서는 어떤 향이 풍겨 나올지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초여름 햇볕을 흠씬 받은 살구 향 이던지, 아주 하얀 심성을 가진 빨간 사과 향이 던지, 노란 참외 향 이던지, 새큼 달콤 자두 향이라도 좋을 듯하다.  

천둥과 번개로 만들어진 소낙비 속에도 아름다운 향이 배어 있다는 고운 심성으로 오늘을 살아간다면 세상 모든 소낙비가 향수처럼 느껴 질 때도 있을 것 같다. 초여름 소낙비가 잦은 요즘 오늘 오후에도 한차례 비를 예고하고 있다. 우선은 포도 향 짙은 소낙비로 흠씬 젖어 쾨쾨한 세상 모든 근심의 냄새들을 씻어 버리고 싶은 여름날이다. 오늘도 아내는 볕이 따가운 포도밭 언저리를 서성이고 있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