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소통방이
이웃 분쟁을 예방하고
사회변혁과 새문화의 동력을 만드는
좋은 씨앗이 되기를

 

   
▲ 이미영 사무국장
평택시이웃분쟁조정센터

1991년 9월 18일 송탄초등학교 가을운동회가 열렸다. 이른 새벽부터 어머니는 김밥을 준비해 우리 삼 남매를 깨웠다. 걸어서 학교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 애국가 제창을 마치고, 길고 긴 교장 선생님의 인사말씀이 끝난 뒤 단체 체조를 시작으로 설렌 운동회가 시작됐다. 초등학교 운동회는 마을 잔칫날이기도 하다. 내 친구 귀동이네, 둘째오빠 친구 유일오빠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에 못다 한 이야기들을 시작한다. 그때는 이웃과 이웃을 이어주는 곳이 마을이었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곳이 학교였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벽과 벽을 사이에 두고 거리상으로는 너무도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서로에 대한 관심과 교류가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위층에서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어색함에 아주머니는 고개만 끄덕였다. 10년 전에 아파트에 이사를 올 때부터 만난 아주머니다.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돈, 시간, 취미, 각자 사람마다 생활하는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삶에 불편함으로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공동주택에서의 층간소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80년대 이후 최근까지 앞 다퉈 지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대부분이 소음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건설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동주택이라는 것이 닭장과 같이 한 지붕에 수많은 세대를 밀집해 살게 하는 구조다 보니, 층간소음뿐만 아닌 냄새와 누수, 베란다, 관리비 등 이웃 간 의견 대립이 많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런 소소한 대립을 법적인 처벌과 같이 상호 상처가 남는 방식이나 싸움이 아닌, 주민 간 자율 신사협정이나 창의적 합의, 대화, 배려, 이해로 해결하는 역량이 점차 퇴화해 이젠 그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는 점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바로 난개발을 통해 넘치도록 지어진 아파트 ‘칸막이 문화’가 고착되며 생긴 ‘공동체 파괴’가 그 원인이다. 우리는 개별화된 편리를 얻은 대신 이웃을 잊었고, 한국사회 전통이 보유하고 있던 고유 사회자본인 신뢰와 협동, 배려가 넘치는 마을공동체를 잃고 말았다. 이는 마을공동체가 왕성할 때 ‘충돌을 예방·완충해주는 신뢰’와 위아래로 얽히고설킨 갈등의 실타래를 쉬이 끊지 않고 풀어내 보다 성숙한 ‘문화를 생산하는 지혜’를 상실한 것이다.

마을공동체 활동은 그다지 새로운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저 평이한 것으로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방법론만이 있을 뿐이다. 마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둘 해결되고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소속감, 연대감, 친화감을 느끼고 이는 곧 정주의식으로 이어져 편안하고 살기 좋은 마을로 변할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갈등 속에서 살고 있다. 갈등은 우리 삶 속의 일부다. 어디든, 누구에게든 늘 존재하는 것이며,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긍정적으로 기능하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갈등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평택시이웃분쟁조정센터는 갈등 예방 활동, 주민 상담과 화해 지원, 주민공동체 프로그램 운영, 이웃관계 회복, 마을공동체 회복 활동을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마을 소통방 일곱 곳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의 이웃 분쟁을 예방하고, 다양한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변혁과 새문화의 동력을 만드는 중장기적 시민운동, 마을공동체 회복운동, 대안적 분쟁해결운동의 좋은 씨앗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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