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빚져
변화를 만드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 김기홍 위원장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지난 6월 19일. 59일 만에 평택항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청년 노동자 이선호를 보냈다. 해마다 무려 2400명이 일하다 죽는데,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이리 덤덤한가? ‘고 이선호 산재사망사고 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아 일하면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반복되는 산재 사망 사고 모습이었다. 어떻게 산재 사망이 발생하는 원인부터 그 뒤에 대응하는 방식까지 모든 게 똑같을 수 있을까? 불과 몇 년 전 19세 김 군이 숨진 서울 구의역 승강장을 찾아가,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충남 태안 장례식장을 찾아가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지 않겠다”라고 약속하던 수많은 정치인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런데도 산재 사망 숫자는 전혀 줄고 있지 않다.

산재 같은 사회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 사회가 재난에 반응하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성숙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일하다가 죽는 게 언제부터 이렇게 당연한 사회가 되었을까. 해마다 노동자 2400여 명이 일터에서 죽는데 어떻게 이리 덤덤할 수 있는 사회가 됐을까. 오늘 하루에만 노동자 7명이 일하다 죽었는데, 어떻게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사회가 되었을까.

어린 청년의 죽음보다 기업 이윤이 우선일 수 있는 사회가 정상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개방형 컨테이너에 적절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았고, 기존에 하던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갑자기 맡는 바람에, 더욱이 현장에 있어야 할 안전관리자와 수신호자가 없어서 24살 어린 청년이 죽었다. 이선호는 기본적인 안전교육을 받지 않아 죽었고,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는 환경이라 죽었다. 부실한 시설 점검 때문에 죽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끊임없이 비정규직을 만들고 원청과 하청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채용 구조로, 안전관리가 근본적으로 지켜질 수 없는 현장에서 일했기에 죽었다.

날짜와 장소, 죽은 이의 이름만 달라질 뿐, 누군가의 친구가, 자녀가, 부모가 죽는 데 기업 편의를 봐준다는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에야 시행된다. 그마저도 산재 사망 사고가 80% 넘게 발생하는 50명 미만 사업장은 3년 뒤에나 법이 적용되고 5명 미만 사업장은 아예 법 적용에서 제외됐다. 돈보다 생명이 우선이라면 80%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제외하는 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단지 영세한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3년을 기다려줄 수는 없다. 그 유예된 기간에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다.

이선호의 죽음에 빚져 ‘중대재해처벌법’ 재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강력한 시행령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엄격한 처벌과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대책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사람 목숨이 돈보다 소중하다 해도, 아무리 죽이지 말라 해도 듣지 않는다면, 바뀌지 않는다면, 사람 목숨이 더 비싸지도록, 사람을 죽이면 회사가 망할 정도의 큰일이 나도록 해야 한다.

장례를 치렀지만, 아직도 남은 문제가 있다. 컨테이너 안전 관리와 감독 등을 소홀히 한 해양수산부의 직무유기와 고장 난 개방형 컨테이너 점검을 소홀히 한 동방TS에 대한 고발, 나아가 전국 항만에서 자행되고 있는 불법 근로공급 계약 문제를 해결하고 실질적인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등의 여러 과제가 남아 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산재 사망 사고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제 진부할 정도다. 똑같은 사고 원인, 똑같은 대응, 비슷한 결말이다. 그러나 그 흔한 죽음을 경험한 주변인들의 세상은 그날로 무너진다. 그러니 이 사회가 이선호의 죽음에 빚져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기폭제가 늘 누군가의 죽음이어야만 하는 세상, 죽어야만 변하는 사회가 더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 죽음에 빚져 변화를 만드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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