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단 이어갈 지휘자 양성이 목표”

 

1997년부터 평택시합창단 지휘
지역 문화예술 발전 위해 노력

 

 

“후배 지휘자를 양성해 평택시합창단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게, 그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제 첫 번째 목표입니다”

음악에 빠지다
이주훈(55세) 평택시합창단 상임지휘자는 1.4후퇴 당시 북에서 남으로 피난 왔다가 평택에 정착한 부모님 아래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전쟁통에 평택에 정착하셨습니다. 당시 아버님은 운수업을 하셨고, 어머님은 통복시장에서 ‘서림상회’라는 큰 포목점을 운영하셨어요. 덕분에 저는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죠”
그는 일찍이 피아노를 접했다. 누나들이 세 들어 살던 음악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서 어깨 너머로 따라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식으로 배우지 못하고 홀로 연습하던 이주훈 상임지휘자는 초등학생 시절 형을 따라간 교회에서 성가대 반주를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우연히 제가 간 날 성가대 반주자가 교회에 나오지 않았고, 제가 대신한 것이 계속해서 반주를 맡게 됐습니다. 평택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관악부 초대 악장으로 활동하면서 모든 관악기는 물론, 드럼까지 섭렵했죠”
그는 관악부 활동을 하면서 일찍이 지휘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음악가로서 가장 오래 활동할 수 있는 직업이 지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시절 대략 1000장이 넘는 음반을 모았고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었죠. 대학에 가면서는 당시 지휘과가 없었기에 작곡과를 선택했습니다”

꿈을 이루다
이주훈 상임지휘자는 대학에 다니며 입시 반주 아르바이트를 했다. 동시에 작곡과, 피아노과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쳤다.
대학 졸업 후에는 평택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했다. 그렇게 학비를 마련한 뒤 스물일곱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3년 정도 오케스트라 지휘를 배웠습니다. 당시 현지 교민교회인 상항영락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맡으며, 지휘자로서 데뷔하기도 했죠”
이주훈 상임지휘자는 한국에 돌아온 뒤 평택순복음교회 임마누엘성가대 지휘를 맡으며 지휘자로써의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불과 3년이 지난 시점에 합창지휘를 배우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뉴저지에 위치한 한 대학에 ‘Dr 플루먼필드’라는 굉장히 유명한 지휘자가 있었습니다. 이 지휘자에게 합창지휘를 배우고 싶은 열망에 재차 유학길에 올랐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주훈 상임지휘자는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에 진학해 합창지휘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오랜 기간 강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쳐왔다.
“대학에서 작곡, 음악이론, 지휘 전공 강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20년 넘게 강사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가르쳤던 과목은 셀 수 없이 많죠”
2008년 아산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를 맡으며 프로 지휘자로서 이름을 알린 그는 계속해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평택시합창단
이주훈 상임지휘자는 1997년부터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서 평택시합창단을 이끌어왔다.
그는 평택시합창단이 아마추어 합창단이지만, 프로 수준의 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프로 합창단을 잘 이끄는 것보다도, 비전공자들과 함께 좋은 합창단을 만드는 것이 좋은 지휘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택시합창단의 경우 각자 생업이 있는 아마추어 합창단이지만, 테너를 맡고 있는 최현정 씨 등 프로 이상의 실력을 보유한 단원도 있죠. 이러한 분들을 만났을 때 지휘자로서 굉장히 즐겁습니다”
이주훈 상임지휘자는 아마추어의 장점으로 겁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열정으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의미다.
“평택시합창단은 아바의 ‘맘마미아’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와 같은 뮤지컬 무대도 소화해냈는데, 생업이 있음에도 프로 수준의 공연을 소화한다는 것은 굉장한 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력뿐만 아니라 모든 단원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그는 지역사회가 이렇게 오랜 기간 활동을 이어온 문화예술단체들이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을 스토리텔링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주훈 상임지휘자의 최우선 목표는 자신을 이어 평택시합창단을 이끌 후배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래야 합창단이 오래도록 지역에 남을 수 있고,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후배들을 위해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져 지역 문화예술계가 갈등 없이 상생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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