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는 죄를 저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더 이상 남겨서는 안 된다

 

   
▲ 김기홍 위원장
평택안성지역노동조합

심각한 경제범죄를 저지른 기업 총수를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목으로 풀어주는 것은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병폐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재벌의 중대한 경제범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세우겠다며 이들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정경유착과 재벌 경제력 집중을 뿌리 뽑으라는 국민들의 엄중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있었던 이가 다름 아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들의 공감’을 운운하며 이재용 부회장의 석방에 여지를 남기는 듯 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술 더 떠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 부회장이 구속돼 활동을 못 하고 있고, 이 부회장이 나와야 투자가 되는 게 아니냐”는 노골적인 발언을 내뱉고 있고, 삼성에서부터 나오는 광고 수입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언론의 연이은 이재용 찬가는 눈물겨울 지경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범죄행위는 비단 국정농단 관련 사건뿐만이 아니다. 이 부회장은 대를 이은 불법 승계와 일감 몰아주기, 횡령범죄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의 준법경영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자신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주가를 조작해 재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수사과정에서 이러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도 모자랄 판에 멀쩡한 공장바닥을 뜯어 관련 증거를 은폐하고 범죄혐의를 부인해왔다. 횡령액이 50억 원을 넘어 ‘특정경제범죄법’상 취업제한 대상이지만 여전히 삼성전자 부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과연 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불러온 국정농단과 불법합병 범죄의 중대성, 교화 가능성, 재범 가능성 그 어떤 것을 따져 봐도 사면은 물론, 가석방 논의도 가당치 않다. 삼성이란 기업이 총수가 없다고 일하지 못하는 조직이 아니다. 기업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회사 돈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제왕적 총수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에서 횡령, 배임 등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과 사면권 제한 추진을 약속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사면 혹은 가석방된다면 이러한 약속을 뒤집는 것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을 되풀이한다면 재벌 총수들은 또다시 경제 권력을 이용해 정경유착을 저지를 것이며, 불행한 국정농단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경제범죄는 계속해서 극성을 부릴 것이고 공정한 사회로의 꿈은 또다시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반도체 등 사업 경쟁력을 위해 사면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이들은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전자를 동일시하는 구시대적 발상에 머물러 있다. 총수와 기업은 결코 한 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감옥에 수감돼 있음에도 삼성전자는 2021년 2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1분기보다 2배 이상 높은 7조 원대 영업이익을 거뒀으며, 같은 해 1분기에도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45% 이상 증가했다. 2020년 4분기에도 삼성전자는 전년 대비 25.7% 상승한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 정도의 영업 성과라면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와 삼성그룹의 실적은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면 혹은 가석방과 삼성의 투자를 거래하는 것은 국민통합과 공공이익의 취지라는 사면 제도와 재범방지, 사회복귀라는 가석방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 재벌 총수는 죄를 저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더 이상 남겨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