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여성의
생애 마지막 편안한 삶이
될 수 있는 지원체계를
서둘러 만들어야

 

 
▲ 김태정 활동가
두레방

두레방의 활동은 기지촌여성 지원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받은 피해 전반의 사실을 국내외에 알리는 활동도 있다. 그중 강연과 미디어 인터뷰는 기지촌여성들의 삶과 기지촌에 국가가 개입하고 조장한 사실을 알리는 데 중요한 활동이다. 필자가 기지촌에 대한 강연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마도 2010년부터일 것이다. 여성단체, 대학교, 종교단체, 평화단체 등 기지촌에 관한 내용을 알고자 하는 곳의 요청이 있다면 기꺼이 가서 강연했다. 2014년 ‘한국 내 미군위안부 국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이후 더 많은 강연을 하게 됐는데 이는 더 나아가 기지촌여성들의 피해역사 현장을 다니면서 알리는 평화기행도 함께하게 됐다. 최근까지도 기지촌 관련 강연 요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늘 해왔던 강연이기에 이전부터 사용했던 자료를 토대로 요청한 곳에 강의안을 만들어 보냈다. 그런데 강의안을 만들다 보니 새로운 강의안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즉, 현장은 변화된 내용이 없어 이전 자료만으로 충분히 현재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지원 관련된 입법화가 실현됐습니다” 등 정책에 따라 변화된 기지촌여성들의 삶, 현장의 활동 소식을 강연을 통해 전하고 싶지만, 여전히 제자리인 상황은 2014년에 만든 강의안 속에 멈춰있을 수밖에 없다.

2014년 122명의 기지촌여성들이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그때, 이미 노령인 기지촌 여성 몇 분이 돌아가셨고 현재 112명이 생존해 있다. 빠르게 지원 정책이 만들어져야 하는 상황임에도 도대체 왜 판결은, 지원 입법화는, 경기도 조례 이후 지원 도입은 한없이 느리게만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든 시간 속에 기지촌여성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작년, 두레방과 함께 했던 한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 홀로 살았던 언니는 연락을 취할 가족도, 친인척도 없었다. 결국 무연고자로 지정돼 두레방에서 조촐한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 통곡하는 이 하나 없는 조용한 장례식장에는 활동가들과 기지촌여성들뿐이었다. 우리는 함께 조용히 언니를 보냈다.

그저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난 5월 기지촌여성인권연대는 2018년 2심 판결 이후로 계속 대법원에 계류 중인 ‘한국 내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었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당사자 여성들과 활동가들은 힘껏 호소했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답은 없다. 또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 통과 후 실질적인 지원 체계를 서둘러 만들 수 있도록 몇 번의 회의에서 호소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법원과 국회 그리고 경기도에 묻고 싶다. 도대체 무엇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가? 기지촌여성들이 가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인가? 아님 기지촌여성들의 삶을 무시하고 싶은 것인가?

국가는 강제 성병 진료, 강제 수용 치료, 그리고 안보라는 이름으로 기지촌을 조장해 취약한 여성들, 소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우리의 아픈 역사로, 여성들의 피해가 진상규명돼 명예를 되찾고 사과하며, 생애 마지막 편안한 삶이 될 수 있는 지원체계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부디 필자의 다음 강의안에 새로운 내용이 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서둘러 기지촌여성들을 위한 정책이 만들어지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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