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서는 한국을 ‘경제기적’과 ‘정치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기적을 이룬 국가라고 한다. 덧붙여 절대 빈국에서 벗어나 한류의 원산지, IT강국, 무역 강국으로 선진 일류 국가로 진입했다는 후한 평가도 따른다. 우리를 ‘선진 일류 국가’라고 꼽는 평가를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이 마음의 불편함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 사회는 분명 양지도 있지만, 그늘과 어둠도 있다. 우리 사회의 화사한 외부 아래에는 많은 문제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우리는 빈부격차, 이념의 양극화, 지역 갈등, 반세기 이상 남북이 어마어마한 재래식무기와 첨단무기들, 그리고 남북 양측이 백만 이상의 병력을 휴전선 일대에 집결시켜 대치하는 준전시(準戰時) 상황이 일으킨 불안과 긴장이 상존하는 사회에서 마음을 옥죄인 채 살고 있다. 우리는 실존의 불확실성에 멀미를 느끼고 자기 정체성의 혼란으로 허우적인다. 게다가 갖가지 ‘X파일’과 스캔들과 음모론,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흉악범죄들로 얼룩진 사회 속에서 팍팍한 삶에 허덕인다. 오죽하면 해마다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더는 살 자신이 없다고, 혹은 삶에 미련이 없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OECD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은 우리 사회 내부에 어떤 심각한 문제들이 상존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자연 생태계에도 경쟁이 있고, 인간 사회에도 크고 작은 생존경쟁이 있는데, 우리의 생존경쟁은 ‘너 죽고 나 살기’식이다. 극단화된 생존경쟁 모형에서는 경쟁에서 뒤처지는 순간 죽음으로 내몰린다. 사람들이 갈수록 살아가는 일에 버거워하는 것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자기를 지킬 수 없는 상태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특히 실업자, 자영업자, 중소기업 경영자,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장애인, 성적 소수자, 미혼모, 조손가정의 아이들, 신용불량자, 노인, 노숙자와 같이 사회적 약자들은 ‘벌거벗은 생명’으로 내쫓기고 있다. 희망을 잃은 채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다가 체념과 자포자기로 몰리고, 결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실존의 영도(零度)까지 밀려나 죽음으로 내몰릴 때 삶은 선물이나 축복도 아니고 차라리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를 일으키는 재앙이다. 보통 사람들도 생존경쟁이 구조화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의 경쟁은 물론이거니와 끊임없이 ‘스펙관리’, 자기계발에 매달리며 나날의 삶을 살아내는 일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나날의 삶에서 생산과 효율성으로 쫓으며 더 많이 더 빠르게 상품과 성과를 낳는 ‘성과주체’가 되도록 강요하는 사회적 시스템에 포획 당한다.

우리 사회는 삶에서 의미와 활력을 고갈시키는 여러 부정적 양태들, 즉 가족 이기주의, 부권 부재, 학력차별이 만드는 병폐들, 소음과 불안강박증, 탐욕과 무한 경쟁, 강박증적인 행복추구, 자아 타락, 정치 타락 따위로 얼룩져 있다. 이런 병적인 요소들, 타락과 부조리들이 넘쳐나는 사회 공동체는 불가피하게 야만사회, 분노사회, 불안사회, 우울사회로 진행한다. 이미 병적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혹자는 우리 사회에는 무수한 ‘동물원’이 있다고 말한다. 이 ‘동물원’의 울타리가 망가지면서 그 안에 있던 짐승들과 “탐욕의 좀비”(이진경)들이 뛰쳐나오면서 혼란과 무질서, 범죄들이 쓰나미로 밀려온다. 힘센 동물들이 저보다 약한 짐승들을 잡아먹는 정글 사회, 혹은 ‘동물원 사회’는 문명화된 공동체가 아니다. ‘동물원 사회’는 타락한 사회이고, 문명에서 퇴행하는 사회이다. 위선과 기만의 가면을 쓴 사람들! 거짓과 피상성으로 덧칠된 삶을 사는 사람들! 내면에는 오기와 자만으로 차 있는 사람들! 출세와 성공지향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우리는 몰염치와 파렴치한 사람들이 득세를 하는 ‘동물원 사회’, 더는 나빠질 수 없는 최악의 사회에 살고 있다.

‘하면 된다’는 구호는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동력이었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지금에도 그 구호는 우리 사회의 내면에 기이하게 과열된 힘으로 떠돌고 있다. 물론 처음에 그것은 우리 사회 내부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지만 그 구호에 함몰된 채 일직선으로 달려가던 우리 내면의 성취지향적 몰이성성을 부추기며 예상치 못한 병폐와 도덕적 위기도 함께 불러왔다.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과잉활동, 노동과 생산의 히스테리는 바로 극단적으로 허무해진 삶, 벌거벗은 생명에 대한 반응”(한병철, ‘피로사회’)들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활동 과잉 상태가 아니었을까? 좋게 보자면 ‘다이내믹’이지만, 나쁘게 보자면 어떤 강박들에 사로잡혀 조금씩 ‘미쳐 있었던’ 게 아닐까?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우리가 꿈꾸던 피안의 세계와는 한없이 멀어지고, 우리 모두가 성과기계라는 괴물들로 변해버린 현실과 마주쳤다. 이제는 ‘하면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될’ 것들을 정직하게 분별하고, 우리 삶의 실체적 진실을 차가운 이성으로 돌아보아야 할 때다. 가면을 벗자. 우리에게 덧씌워진 가면 아래 숨겨진 맨얼굴을 보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장석주/시인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