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원하던 희망들이
지독한 무더위에 잘려 나간 것도
계절통 때문이었다고
허울 좋은 핑계를 대고 싶다

 

▲ 권혁찬 전 회장
평택문인협회

서서히 찬바람이 섞여 분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서릿발 소식이 있을 듯하다. 계절의 마디마다 조금씩의 통증이 있기 마련이지만 우린 종종 놓치고 지나가기도 하고 알지 못한 채 멀어지기도 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유독 찬바람이 불거나 가을 낙엽이 질 때면 유난히 가슴앓이를 한다. 계절통이다. 생각의 분량이 서로 다른 까닭일까. 방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까 생각해 본다. 아니면 내게 불어 닥치는 바람의 성질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잔잔한 여울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의 파장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면서 그려지는 동그라미의  관상을 따라 바뀌어 지는 바람의 방향처럼 쉽사리 휘어지고 곤두박질치는 사람의 마음이 원인일거란  생각이 갑자기 가슴팍을 쥐어박는다.

어쩌면 사람들이 만들어낸 시기의 소용돌이에 스스로 함몰되는 자멸통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낙엽이 불러주는 부스럭 교향곡에 발맞추어 웃음소리 들리는 세상을 두드리기 시작하면 드디어 내일 또 다른 골바람이 불고 온화한 가슴이 훈훈해지는 온정의 시간이 올 거란 소망이 아쉬워진다.

하루해가 저무는 듯 짧아지면서 가는 한해를 잘 넘기자는 다짐으로 매일 아침을 맞는다. 사무실 문을 열고 커튼을 올리며 또 하루치의 소망을 빈다. 그저 빗나가지 않고 오늘 분량만큼의 호흡을 가다듬으며 잠자리에 들기를 기도한다. 그러다가 또 어긋난 하루의 셈법을 고쳐 쓰면서 늘 상 잠을 설친다.

원인은 계절통이라고 밀어붙여 누명을 씌워 봐도 새벽이 낮보다 달콤하지 않음에 또다시 계절을 원망해 본다. 사람이 만들어낸 계절통에 전전긍긍하는 나약함에 낙엽 몇 묶음 주워들고 포만을 느껴 보고픈 유난히 마음이 아픈 10월의 벌판에서 두 팔을 벌려 본다.

계절통아 사라져라! 바람의 길 위에 뿌려진 가랑잎보다 가벼운 나머지 몇 가닥 숨을 고른다. 긴긴 겨울을 향해 달음질치는 가을의 꼬리를 물고 있는 것처럼 어스름한 시간을 정리하련다.

새로운 봄의 얼굴이 그려지고 있다. 계절통을 이겨낸 보답으로 내게 안겨진 이 가을 선물처럼 더욱더 붉고 노란 단풍들만 골라 창가에 걸어두고 싶다. 유난히 크거나 유별나게 뾰족하거나 이상하게 길쭉하거나 한 각양각색의 나뭇잎들을 주워 주머니 속 깊이 찔러 넣어본다.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무더웠던 긴 여름이 원망스럽다고, 짧아진 가을이 아쉽다고, 다가올 겨울바람이 무섭다고 손사래를 치듯 오래도록 사각거린다. 부스럭거리던 낙엽들의 행방이 묘연해지면 그동안 스며들었던 계절통도 사라지리라 믿는다.

순전히 계절바람 때문이었다고 뒤돌아 손사래를 칠거다. 가슴이 울렁이던 동통들도 모두 다 계절 때문이었다고 핑계를 댈 것이다. 손마디가 저리도록 애원하던 희망들이 지난여름 지독한 무더위에 잘려 나간 것도 계절통 때문이었다고 허울 좋은 핑계를 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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