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정신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50년 넘게 미군 제자 양성
올해 은퇴 결정, 9월 퇴임

 

 

“오래도록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저만의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했죠”

고난의 시절
일제강점기 평택시 고덕면 두릉리 농촌에 태어난 문도식(85세) K-55 평택오산미공군기지 태권도 그랜드마스터는 역사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태어나 학창 시절 평생 잊지 못할 일들을 겪어야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우리말을 썼다는 이유로 일본인 교사에게 맞기도 했습니다”
독립이 이뤄지고 나서도 역경은 계속됐다. 그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인민군에게 붙잡혀 의용군으로 끌려갈까 봐 아버지와 함께 아산 둔포로 피난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다행히 저희 고향 동네에는 인민군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송탄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이뤄졌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죠”
문도식 그랜드마스터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유복한 집안에 태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쟁 이후 평택에는 마땅히 갈만한 학교가 없어 서울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매일 새벽 6시에 집에서 나와 서정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먼 등굣길에 올랐죠”
학교를 졸업한 뒤 일찍이 결혼한 그는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하다가 자식 둘을 낳고 난 뒤에야 군에 입대할 수 있었다.

태권도를 가르치다
문도식 그랜드마스터는 열여덟 살부터 송탄 청도관에서 태권도를 배웠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태권도는 군 전역 이후 태권도 붐이 일면서 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미군기지 안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던 청도관 사범이 미국에 이민을 가게 되면서 자리를 물려받게 됐습니다. 당시 그 자리를 원하는 선배들이 많았지만, 면접을 치른 끝에 열두 명 중에 제가 선발됐죠”
미군을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제자들이 잘 따르게 만들기 위해서는 능숙한 영어 실력이 필요했고, 그는 끊임없이 노력했다.
초기에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심신을 잘 단련하고 사범을 잘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를 이해시키는 일이 힘들었어요. 왜 자신만 지적 하냐며 따지는 경우도 있었고, 대련 중 급소를 맞고 그만두겠다며 뛰쳐나간 제자도 있었죠”
문도식 그랜드마스터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태권도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진심을 다했고, 이는 결국 제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미군은 모두 순환배치가 되는데, 한국으로 배치를 받은 미군이 미국으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소개를 받고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며 연락해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국으로 재배치된 제자들이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죠”

태권도 그랜드마스터
문도식 그랜드마스터가 50년 넘게 미군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그랜드마스터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제자들에게 항상 침착하고 정신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발차기 하나를 가르치더라도 왜 필요한 동작인지, 어떠한 상황에서 쓰이는 기술인지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죠”
오랜 경험은 그를 더 단단하게 했고, 많은 나이에도 계속해서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새로 들어온 제자의 표정과 행동만 봐도 어떤 친구인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태권도를 배우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게끔 하는 노하우도 많이 생겼죠”
문도식 그랜드마스터에게 태권도를 배우는 순간만큼은 일반 병사든, 장교든, 사령관이든 계급에 상관없이 태권도 규율에 따라야 했다. 엄격한 규율 아래서도 그는 제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고, 이는 미국에서도 그의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만들었다.
“전역한 뒤에 미국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제자도 많이 있습니다. 뉴욕, 캘리포니아, 워싱턴DC, 유타, 괌,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전역에 있죠”
미국 전역으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지만, 오랜 세월 속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낀 그는 결국 은퇴를 결심했고, 지난 9월 태권도장을 떠났다.
“해가 지날 때마다 체력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는 스스로 제 몸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행히 제가 떠나온 자리를 막내아들이 이어받아 믿고 안심이 됩니다”
오래 몸담았던 도장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대를 이어 태권도를 가르쳐온 아들 문희성 관장이 있기에 다행이라는 문도식 그랜드마스터는 이제야 온전히 자신의 몸을 돌볼 수 있게 됐다. 비록 현장에서 떠났지만, 그가 존경받는 태권도 그랜드마스터로서 오래도록 제자들 곁을 지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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