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테러

 

유영희

 

이 꽃 천지에 자객이 들었다
한 송이 한 송이 붉은 처소 묽어지는 피
비명이 없는 낭자한 입관식
그대는 나를 위해 미친 듯 웃어 주어라
꽃이란 이름을 불나비처럼 불러 대었으니
천상과 지상으로 다시 불려간다

 

 

짧지만 완성도가 높은 시이다. 자객에 의해 죽음을 맞은 꽃, 바닥에 수북하게 떨어진 붉은 꽃잎을 본 시인은 그 장면을 “비명이 없는 낭자한 입관식”이라고 표현한다. 바닥에 피가 흥건한 공포의 한 장면이 연상되지만 그 어디에도 비명은 없다. 그것이 극적인 시적효과를 거둔다. 순리에 순응하는 꽃의 죽음 앞에서 시인은 그동안 꽃의 이름을 ‘불나비’처럼 가볍게 불렀던 자신을 질책한다. 시인은 자신을 위해 미친 듯이 웃어달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시의 완성도를 높인다. 마치 비웃음을 당해도 마땅하다는 표현이다. “천상과 지상으로 다시 불려”가는 꽃의 죽음, 세상의 어떤 죽음이 가벼울 수 있으랴. 꽃이나 사람이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갖는 죽음의 무게는 모두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임봄/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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