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동 마을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
평택의 가볼 만한 곳으로
전국 명소를 만들어야

 

   
▲ 윤시관 상임대표
문화재지키기시민연대

평택은 서울과 세종시의 딱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앞으로도 계속 성장과 팽창을 해나가 대도시가 될 것이다. 그래서 고덕국제신도시에 그동안 없었던 ‘평택박물관’과 ‘평화예술의전당’, ‘중앙도서관’ 등 각종 문화시설이 들어서고 하드웨어적인 규모에 걸맞게 소프트웨어도 내실 있게 채워지고 운영의 묘도 살려나갈 것이라 믿는다.

아울러 평택시청이 이전한다면 현재의 남부지역은 무엇으로 채워지게 될까? 평택시의 중심축이 모두 옮겨져 가고 난 이후 남부지역에 대한 설계는 되어있는가 함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남부지역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보자. 조선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의 사당이 있고, 임진왜란의 세 일등 공신 중의 한 사람인 원균 장군이 모셔져 있는 평택의 북부지역인 진위에는 최근에 어사  박문수 영성군의 위민 정신을 현세 정치에서 본받자는 운동을 펴나가는 이가 나타났다. 2012년부터 MBC와 함께 DMZ 안보관광의 돌풍을 일으켰던 장승재 암행어사박문수문화관장이 주인공이다. 무려 210건이 넘는 설화와 현대 작가들이 쓴 단행본만도 123편이나 되고 논문이 76편, 대중가요 25곡, 드라마나, 사극, 다큐멘터리에 30번이나 등장하는 등 어사 박문수에 대한 자료들을 그가 조사해서 발표했다. 향후 어사 박문수의 위민, 충성, 청렴, 소통, 실천을 가르쳐서 세상을 바꿔 나가겠다는 포부를 가진 게 분명하다.

필자도 평택 남부지역에 꼭 그려 내고 싶은 그림 있다. 조선시대 세재 개혁으로 백성들의 삶의 질을 바꿔 놓은 잠곡 김육 정승의 업적으로 잘 살게 된 충청도민들이 그의 장례 때 거둔 부의금을 자손들이 받지 않자 덕목을 기리는 공적비를 지금의 평택시 소사동에 세웠다. ‘대동법시행기념비’가 있는 마을인 ‘소사동 원소사마을’에 조선시대 국가가 운영하던 ‘소사원’ 주막을 재현하고 김육의 생존 시기인 1580~1658년대의 소새장터도 재현해 지금은 생활하수가 내려가는 수로인 소사천을 본래의 모습으로 넓혀서 예스럽게 섶다리도 놓아서 ‘삼남대로’를 재현하고, 온양온천 행차 때 임금이 머물며 쉬어갔던 ‘어막대’도 설치하고, 현종이 소사다리에서 펼쳤다는 군사훈련의 위엄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군과 청나라 연합군이 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그날의 함성도 재현하고 싶다.

현대로 돌아와 4월 중순경에는 ‘배꽃축제’를 열고, 소사뜰에서 생산된 쌀로 맛있는 떡도 빚어서 함께 나누고 모내기 소리, 논매기 소리, 풍년을 구가하는 풍년가 등 공연과 김육 정승의 장례 때 모셨을 장중하고 오색찬란한 원색의 상여와 수없이 펄럭이는 만장기의 행렬에 이어지는 끝없는 백성들의 조문 행렬까지, 그리고 평택민요 ‘상여소리’의 구성진 가락에 상여꾼들 이 비틀거리며 이리저리 상여를 흔들며 애통함을 연출하면서 상여를 메고 소사교에서 삼남대로 소사원 주막을 지나 힘겹게 고개 마루를 오르는 장례요 공연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있어야 할 것들이 제자리에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었던 소사동 ‘돌미륵입상’은 분명히 훔쳐서 없앤 자가 있고 취득한 장물아비가 있을 것이니, 법적 책임을 물리고 제자리에 환원시켜서 옛 모습으로 복원해야 할 것이다. 평택시 소사동은 마을의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 평택 남부지역의 가볼 만한 곳으로 전국 명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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