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천국은
단지 소년기로 돌아가고픈
추억여행만은 아니었다

 

 

   
▲ 정재우 대표
가족행복학교

가을비 우산 속에 해운대와 영화의 전당을 오고 가며 나는 사뭇 시네마천국을 걸었다. 못내 아쉬워서 결국 하루를 더 연장하고 영화는 모두 8편을 보고 왔다. 그 순간들의 설렘과 감동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다. 나의 소년기 감성을 깨우며 관람한 영화마다 색다른 여운을 남겼다.

첫날, 부산 센텀시티역에 도착했다. 영화의전당 옆 신세계CGV센텀시티에서 첫 영화를 보았다. 인도, 바랏 미를 감독의 ‘쿠스리야르 가는 길’이었다. 야생동물학자가 인도 남부 오지의 포유동물을 관찰연구차 떠났다가 극빈층의 가이드를 만나면서 그의 삶과 애환을 접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신분과 빈부의 격차가 여전한 인도의 오랜 사회문제를 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본 영화는 핀란드, 티무 니키 감독의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였다. 시각장애와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 환자가 1000㎞나 떨어져 있는 암 환자 연인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이다. 장애인 편에서 바라본 세상이 얼마나 살벌하고 잔혹한지를 보여주었다. 복지 분야가 뛰어난 북유럽 국가의 상황이 이렇다면 우린 어떠할까 생각했다.

다음날, 세 번째 도전한 영화는 미얀마, 리용차오 감독의 ‘2020년의 비’였다. 감독의 친동생 가족을 등장 시켜 7년 동안의 기록을 남겼다. 장마철로 인한 피해와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았다. 국가 단위로 가해지는 경제적 착취 문제를 제시했다.

네 번째 영화는 싱가포르, 로이스톤 탄 감독의 ‘24’였다. 도시와 사람들, 자연과 숲, 등지에서 다양한 소리와 다양한 감정을 찾아가 24개의 소리의 현장을 녹음기에 담는 이야기다. 사라져가는 인생과 삶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다섯 번째 영화는 캐나다의 한국계 캐나다인 안신 감독 작품 ‘A.I: 인공불멸’이었다. 곧 현실로 다가올 인공지능 미래산업의 발전이 가져올 과제를 추적한다. 특히, 우려를 안겨줄 인간애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흘째, 여섯 번째 영화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영화였다. 중국, 장츠 감독의 ‘기억의 감옥’이다. 2030년, 과학이 발달해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조작된 기억을 세뇌시켜 청부살인자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기억 찾기 이야기다. 관람을 마친 후 그 현장에서 장츠 감독과 줌으로 연결해 관객과의 대화시간을 가지는 이벤트가 있었다. 첫 질문자로 나서서 감독에게 “엔딩 부분에 나오는 자막 ‘과거라는 기억을 품고 희망의 미래를 열어간다’는 의미와 영화 장면을 연계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매우 강렬한 미래세계의 고민을 제시한 영화였다.

아쉬움을 누를 수가 없어서 하루 일정을 연장해 두 편의 영화를 더 예약했다. 그 일곱 번째 영화는 이탈리아, 조나스 카르피냐노 감독의 ‘키아라’였다. 범죄 조직과 연루된 가족과 아빠의 진실을 추적하는 15살 소녀의 혼란기를 다룬 영화였다. 가족의 소중함과 번민하며 적응하는 성장영화였다.

마지막 여덟 번째 영화는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상영한 일본, 구사노 쇼고 감독의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이었다. 고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성애 문제를 다룬 영화였다. 이 영화는 앱소설, 드라마, 이제 극영화로 제작되었다. BL(boy love) 만화를 좋아하는 소녀와 실제 게이가 만나 연애 시도부터 우정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성 소수자들이 받는 사회적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바로잡고자 하는 실험적 영화였다.

나흘째, 부산을 떠나오면서 나는 풍성한 감성과 폭넓은 지혜를 얻게 돼 벅차올랐다. 세계문화의 흐름과 영화세상을 짧은 시간이라도 누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감명 깊은 예배나 기도에 몰입했을 때 느꼈던 영적 만족감 못지않은 정서적 만족을 누렸다. 필자에게 시네마천국은 단지 소년기로 돌아가고픈 추억여행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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