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부사나 형용사로는 그 뜻을 다 말할 수 없다. 사람은 동물(動物), 말 그대로 움직이는 존재다. 발을 가졌으니 그 발을 사용해서 어디로든지 움직이는 게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포유동물이다. 사람은 언제나 움직이는 존재이니 인생은 움직임 속에서만 번쩍 하고 나타난다. 인생은 동사(動詞) 속에서 그 본질을 다 드러낸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내 나이는 중년을 넘어 노년의 초입에 이르렀다. 20대 청춘들은 나보다 한참 연하다. 청춘이 상류라면 나는 인생의 하류에 와 있다. 상류의 물들은 얕고 흐름은 급하다. 상류의 흐름이 급한 것은 빨리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조급함 때문이다. 하류의 물들은 넓고 깊으며 흐름은 느리다. 이미 대양의 초입쯤에 도달해서 대양의 냄새를 맡고 그 실체를 어느 정도는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청춘, 어른과 소년의 중간. 그건 비릿한 나이다. 가슴에 꽃과 태양과 연어와 맹수를 품고 질주하는 게 청춘이다. 꿈과 육체, 젊음의 오만과 희망이 청춘의 재산이다. 허나 꿈과 육체, 젊음과 희망은 환전이 안 되는 재화다. 물론 그 가치에 합당한 환불도 불가능하다. 나는 결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 청춘은 너무 끔찍했다. 내가 호랑이보다 꿈을 덜 꾼다는 사실 말고는 위안이 되는 게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 근처에 있는 중학교 운동장을 하염없이 달린다거나 시립도서관에 나가 하루 종일 책을 읽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날마다 시립도서관의 참고열람실에 나가 꾸역꾸역 책을 읽었다. 수많은 책들 중에서 니체, 콜린 윌슨, 바슐라르, 사르트르, 김현, 김우창, 고은, 김수영 들이 위로와 평안을 주었다.
스물네 살 때 신춘문예에 당선했다. 시립도서관에서 아무 기약 없이 노트에 하염없이 끼적거린 시와 평론이 빛을 본 것이다. 그리고 밥벌이의 수단으로 출판사에 취직을 했다.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서울 인사동 부근에 있던 출판사의 편집부 말단에서 잡다한 책들의 교정지를 하루 종일 끌어안고 있는 게 내 일이었다. 왜 이런 책들이 세상에 나와야 할까, 하는 회의가 이는 책들의 교정지를 붙들고 읽는 일은 따분했다. 그때 그리스 출신의 위대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라는 그리스 작가의 자서전을 만났다. <영혼의 자서전>(원제는 ‘그리스인에게 이 말을’이다)이 그 책이다. 내게 그 책의 교정지가 주어진 것은 선물이요, 축복이다. 나는 교정을 보다가 어느 대목에서 벼락을 맞은 듯 놀라 얼어붙었다.

주님, 나는 당신의 손에 든 활입니다. 당겨 주소서.
주님, 너무 세게 당기지는 마소서. 나는 약한지라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주님, 마음대로 하소서. 부러뜨리든 말든 뜻대로 하소서.

나는 당신의 활이다. 당신이 너무 세게 당긴다면 나는 부러질지도 모른다. 활은 당신에게 속해 있으니, 부러뜨리든 말든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카잔차키스의 기도문은 화살이 되어 내 마음의 과녁을 꿰뚫었다. 나는 여전히 가난한 청춘이고 주린 영혼이었으나, 카잔차키스의 이 구절을 만나고 어쩐지 내가 그때까지 부러지지 않은 채 있다는 것,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이 신들의 영광이라는 생각에 젖어 마음이 넉넉해졌다. 시인 횔덜린은 “존재한다, 살아간다,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는데, 나 역시 처음으로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살아간다. 이것을 충분하다!

조르바는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으나 세상이란 책을 속속들이 꿰차고 무시무시한 지혜를 얻는다. 겨우 책이나 끼고 살며 지식분자에 만족하던 작가는 조르바가 가진 무지의 지혜에 크나큰 충격을 준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호메로스, 단테, 베르그송, 니체, 붓다, 레닌, 톨스토이와 동렬에 놓는 위대한 스승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조르바에게 깊은 감명을 받고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에게서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라고 고백한다. 사람들은 카잔차키스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은 그가 그리스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고도 남을 만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죽어서 고향 크레타 섬에 묻혔다. 그가 직접 쓴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나는 자유다” 자유야말로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절대가치다. 카잔차키스는 뼛속까지 자유인이었던 조르바에게 감염된다. 그의 방랑과 편력은 그 자유를 얻기 위한 위대한 여정이었다. <영혼의 자서전>이 나온 뒤 나는 출판사 대표에게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출간을 건의했다. 이 건의가 촉매가 되어 그의 전집이 나오게 되었으니, 어쩌다 카잔차키스의 전집을 읽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혼자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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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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