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문화예술 생태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공연예절에서부터 문화예술단체 활성화까지 민·관 노력 절실
천편일률적인 평가시스템은 문화예술 저해요소, 기준 달라야
문화예술단체 공유조직 제도화로 예술작품의 몰입도 높여야

 

인구 100만을 꿈꾸는 평택시는 몸집만 불리는 도시가 아닌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예술이 꽃피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가야 할 길은 지극히 멀게 느껴진다. 공연예절부터 예술단체의 자생력을 키우는 일까지 민과 관에서 하나하나 풀어가야 할 숙제가 많다. 아래에서 언급되는 일부 사례는 오래 전부터 평택 지역사회에서 문화예술계의 문제로 대두되어 왔던 내용들이다. <평택시사신문>은 창간 10주년을 맞아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지점들을 다음 사례들을 통해 생각해보고, 향후에도 지속적인 기획보도를 통해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들을 이어가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 ※본 특집기사에 게재된 모든 사진은 기사 본문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1 평택시남부문예회관에서 한창 진행 중이던 ‘○○음악회’, 갑자기 한 공직자가 무대 뒤에 있는 행사 관계자들에게 다가가 “시장님이 오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분주하게 시장의 무대 인사를 준비하는 행사 관계자들은 연주 한 곡이 끝나자 부랴부랴 “시장님이 오셨다”는 멘트를 전하고 무대 위로 올라와 인사말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연주는 중단됐고 관객들은 시장의 시정 관련 업적과 함께 긴 인사말을 들은 후에야 다시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 2 무대 위에서는 공연이 한창이다. 공연시간 10분이 지났을 무렵 공연장 문이 열리고 몇 몇 관객이 어둠을 헤치고 들어와 객석 자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이런 분주함은 30분이 지난 후도 수차례 이어진다. 공연 중 입장을 제한하는 사람도, 객석을 안내하는 사람도 없다. 어떤 관객은 제대로 공연에 몰입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털어놓고 또 어떤 관객은 앞으로는 돈을 더 주더라도 제대로 공연에 몰입할 수 있는 대도시에서 관람해야겠다고 한숨을 쉰다. 

# 3 연극배우가 무대 위에서 서로 대사를 주고받는다. 그때 갑자기 객석에서 불빛이 번쩍인다. 공연사진을 찍는 것이다. 배우의 시선은 불빛으로 쏠리고, 순간 몰입해서 외우던 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내 다시 공연에 몰입한 배우가 잠시 극을 순조롭게 이어가는가 싶던 순간, 이번에는 한편에서 어린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휴대폰 벨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진다. 배우들은 다시 실수를 연발하고 관객들은 공연 수준이 낮다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 4 지역 예술단체의 정기공연일. 단체 관계자들은 새로운 공연기획이나 내용의 질보다는 관객 모으기가 더 중요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연 평가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관객의 수이기 때문에 관객 수가 적으면 내년 보조금을 따내는데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예술단체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대적인 홍보보다는 꼭 와서 자리를 지켜줄 수 있는 지인 위주로 홍보해서 객석에 앉히는 일이 더 급선무가 된다. 지인이 많으면 다행이지만 지인이 없는 예술가에게 관객이 많은 공연은 지역에서 꿈도 못 꾸게 된지 오래다. 

# 5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단체. 야심차게 준비한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싶은 마음에 밤새 연습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지역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목표지만 그보다 당장 닥친 일이 더 걱정이다. 행정이나 문화재단에서 요구하는 자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예산의 흐름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정산은 더 큰 걱정이다. 그러나 정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내년 보조금에 도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국 청년단체는 공연보다는 행정 위주의 실무에 더 마음을 쓰게 되고 도전하고 싶은 것도 포기하기에 이른다. 

# 6 지역에서 20년 이상 활동해 온 중견 예술단체. 매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 왔고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부서 담당 공직자가 바뀔 때마다 매번  신생 예술단체인 것처럼 행정에서 요구하는 서류들을 하나에서 열까지 제공해야 한다. 특히 실무자가 없는 단체의 경우 이 문제는 보조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예술인들에게 행정에서 요구하는 서류란 공연기획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이들은 기존의 서류들은 제외하고 새로운 이력만 간단하게 제시하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 ※본 특집기사에 게재된 모든 사진은 기사 본문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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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예절, 시민 문화향유권의 첫걸음
과거 문화예술 공연은 고소득, 고학력의 예술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을 위한 고급문화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문화예술 공연은 대중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매개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그것을 소비하는 것 자체가 큰 상징성을 가질 만큼 중요하게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이제 문화예술 공연을 전문가 못지않게 평가하기도 하고 소득의 상당부분을 문화예술 소비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수준이 대중의 생각과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수준이 높아지지 못하는 것은 위에 언급한 사례에서 보듯이 행정 절차가 복잡하거나, 공연예절이 지켜지지 않는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인구 100만의 도시, 국제화를 지향하는 평택이라면 이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분명하고 심도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이다. 
비록 서울 등의 대도시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유치한다 하더라도 공연예절이 지켜지지 않아 감상을 방해한다면 오히려 예술단체의 수준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예술인들은 관객의 인정과 호응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정받는다는 느낌은 관객의 몰입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공연이든 관객이 몰입하지 못하는 산만한 분위기에서 좋은 공연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얼마 전 한 공연에서는 주최 측이 내빈 인사말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상이 되는 내빈 스스로가 예술 공연에서 인사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극구 사양한 일이 있었다. 그 덕분에 관객들은 온전히 공연에 몰입할 수 있었고 단체에서는 내년에도 이 같은 선례를 바탕으로 단체 회원들을 중심으로 공연문화 정립에 앞장서면 좋겠다는 희망에 찬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다.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는 스스로 바꾸어야 하고, 민과 관이 함께 노력해서 바꾸어나가야 한다. 아무리 좋은 공연이라 해도 공연예절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온전히 향유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 공연의 첫 걸음은 관객 스스로가 공연예절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안내와 인력배치 등의 시스템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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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 수에 따라 평가되는 공연의 한계
‘평택시 문화예술사업 평가표’에 따르면 공연의 경우 평가항목은 ▲준비 및 진행상황의 적절성 15점 ▲공연구성도 20점 ▲공연 예술성 25점 ▲사업의 효과성 25점 ▲지역예술 발전의 기여도 15점으로 배점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준비 및 진행상황의 적절성에는 사전 홍보, 공연진행 준비, 관람객 사전 안내 등이 포함된다. 공연 구성도에는 장르와 프로그램의 일치, 예술성과 대중성의 조화, 공연내용과 무대구성 짜임새 등이 포함된다. 공연 예술성에는 공연의 완성도, 공연의 독창성, 메시지 전달력이 포함된다. 사업의 효과성에는 관람객들의 참여도, 관람객들의 호응도가 포함되며 비대면 공연의 경우 공연기획 대비 결과의 만족도를 포함시킨다. 지역예술발전의 기여도는 지역예술문화의 특징 반영, 지역 문화예술 공간 자원 활용,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 기여 등이 포함된다. 
이들 평가내용에서 살펴보면 관객들의 참여도와 호응도 점수배점은 25점으로 공연의 완성도와 독창성을 포함하는 예술성과 함께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공연의 질을 결정하는 공연 구성도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전시의 경우 평가배점은 ▲준비 및 진행상황의 적절성 15점 ▲전시 주제의 적합성 20점 ▲전시 구성도 25점 ▲사업의 효과성 25점 ▲지역예술발전의 기여도 15점으로 되어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준비 및 진행상황의 적절성에는 공연과 마찬가지로 사전홍보, 전시진행 준비, 관람객 사전 안내 등이 포함되며, 전시 주제의 적합성에는 주제와 설치작품의 일치성과 주제 전달력이 평가 대상이다. 전시 구성도는 예술과 대중성의 조화, 전시작품 구성의 짜임새, 전시 독창성 등이 포함되며, 사업의 효과성에는 관람객의 참여도와 관람객의 호응도가 포함돼 있다. 지역예술 발전의 기여도 역시 지역예술문화의 특징 반영, 지역 문화예술 공간 자원 활용,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에 기여했는지가 평가대상이다. 
전시에서도 공연과 마찬가지로 관람객의 참여도와 호응도가 전시 자체를 평가하는 것보다 높거나 혹은 가장 높은 배점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사례에서 언급한 것처럼 매년 하는 공연의 질이 평균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 평가 결과는 자연스럽게 관객 동원이나 관객 호응도에서 갈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가결과는 지역 예술단체의 지속성과 자생력을 결정하는 보조금 지급과 연관되므로 예술단체에서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연을 통한 실험적인 무대 보다는 관객동원과 호응도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문제는 모든 공연과 전시에 이 같은 평가표가 일괄 적용된다는 점이다. 만일 대중성을 요하는 공연이나 전시라면 당연히 관객의 평가를 높게 책정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실험적이고 비 대중적인 공연이나 전시에서도 같은 평가기준을 제시한다면 이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억제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각 문화예술 공연이나 전시는 지향하는 지점에 따라 심사평가 방식이나 평가내용, 평가항목, 비중도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예술이라는 장르가 실험적이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장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행정의 이 같은 평가항목은 적극 지양되어야 그러한 혜택이 결국 시민의 문화향유권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잘못된 방식을 예술평가의 잣대로 들이대 지속하는 것은 예술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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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시 문화예술 발전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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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공연문화를 확립해 가는 과정이나 각 공연이나 전시의 특성에 따라 평가의 공정성과 변별성을 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외에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대부분의 문화예술 단체에는 전체 사업비에 자부담 10~30%를 의무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열악한 예술단체의 실정을 감안할 때 이 비용은 그리 만만치 않다. 따라서 많은 편법이 동원되는 경우도 있고 자부담을 마련하기 위해 공연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자부담 면제는 예술인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고 지역 예술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보조금을 받는 단체의 경우 처음 선정 때부터 일정기간 동안은 지속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원으로 실력을 쌓고 새로운 모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는 전문가 평가와 세부적인 평가를 거쳐 일몰제를 적용함으로써 열심히 노력하는 다른 단체에게도 기회를 주는 제도를 마련해 적용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는 모든 단체에게 공정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마련되고 지침을 뚜렷하게 적용해야 일부 단체에서 노력 없이 사업 지원금을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식의 인식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신진 예술인들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문화를 선도하고 지속가능하게 만들 문화기획자를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별도의 기획자가 없는 단체의 경우에는 사업을 수행한 예술가들이 사업에 보다 편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사업을 신청하는 방식을 교육하거나, 혹은 행정에서 요구하는 시스템 등을 교육하거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핫라인을 구축하는 등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어야 한다. 
넷째, 예술단체가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사업을 신청하는 서류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혹은 사업수행 이후 보조금 정산을 어떻게 하는지 등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시스템을 교육하는 방법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술인들이 예술에만 몰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예술단체들이 공유할 수 있는 별도의 조직과 사무공간을 갖추고 그 조직에서 정산이나 예산신청, 사업신청 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단체 공유조직을 제도화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다섯째, 평택시에도 이젠 평택시문화재단이 생긴 만큼 재단에서는 모든 공모사업에 공통적인 지침과 규정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지역문화예술을 육성할 수 있는 예산이 적고 중앙정부와 매칭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기획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재단은 평택시의 현황에 맞는 지원 사업에 따른 제도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앙정부 틀에서 제시한 큰 사업의 틀 안에서도 사업명을 더 세분화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상황에 맞는 예술가들이 그 사업에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문화예술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매개체이다. 매번 비슷하거나 같은 공연으로 문화예술이 일상화된다면 그것은 문화예술을 통해 삶의 가치를 생각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문화예술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유, 문화예술을 실현하는 예술인이나 예술단체를 육성하고 이들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민과 관이 함께 노력해야 할 과제다. 공연예절을 지키는 일, 제대로 평가하고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살피며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예술인이나 예술단체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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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임봄 기자
편집·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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