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동참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 임윤경 대표
평택평화센터

갑자기 추워진 지난 금요일, 올해 마지막 미군기지 주변 환경감시 활동을 진행했다. 칼바람이 불어 두터운 머플러와 모자를 눌러쓰고 걸었다. 매서운 바람은 모자를 뚫고 시린 손끝을 지나 발끝까지 전해졌다. 그래 겨울은 추워야 맛이지. 그렇게 한참 걷다 도착한 곳은 서탄면 금각리의 신탄약고. 신탄약고 주변은 겨울 찬바람만큼이나 황량하고 냉랭했다. 신탄약고가 들어서기 전에는 논농사를 짓던 곳. 도로 한쪽에는 양감과 서탄을 알리는 녹색 이정표가 정겹게 서 있었고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신나게 논두렁을 뛰어다녔던 곳. 미군기지 울타리 옆 뽕나무 열매를 따 먹으며 진위천 주변에서 물장구를 쳤던 이곳. 그 친숙함 정겨움.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게 없어졌다.

평택지역 20여 개 시민단체가 ‘미군기지환경감시단’을 발족한 것은 2017년 3월이다. 그 전부터 비상시적으로 감시 활동을 진행했지만, 발족 후에는 정기적인 감시 활동을 진행하게 되었다. 미군기지환경감시단은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를 미리 알아내 대응하는 데 목적이 있다. 피해지역에 또다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고 주민 인터뷰, 사진 촬영을 통해 기록을 남기고 의문점이나 궁금한 점은 정보공개청구를 한다. 환경감시 활동으로 기록된 사진은 무려 1만 장이 넘는다. 사진 속에는 마을이 없어지고 숲이 없어진 모습, 이제는 볼 수 없는 옛 도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미군기지 관련 기록 사진을 정리할 때마다 “뭔가 해야 해” 중얼거린다. 미군기지 감시 활동을 4년 동안 꾸준히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감시 활동을 펼치고 4년이 지난 지금 신탄약고가 만들어졌다. 대형 탄약고와 소형 탄약고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무기가 쌓이고 있다. 그렇게 쌓여있는 무기는 얼마나 위험한가. 하지만 무기의 위험성은 우리의 삶 속에서 느끼기에 여전히 멀고 추상적이다. 일상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무기의 위험성. 게다가 새로운 탄약고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평택에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겨울이 되면 여전히 눈이 내리고 탄약고 주변 잘 닦인 도로에는 차들이 쌩쌩 달린다. 무기의 위험성은 크고, 무겁고, 엄청나지만, 우리는 그 위험성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다. 이것이 감시단의 가장 어려운 문제다. 감시 활동으로 얻은 자료와 정보, 사진에서 보이는 변화들, 무기의 위험성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

지난 11월 말, 4년여의 감시 활동을 알리는 ‘온라인 보고회’를 준비했다. 미군기지로 인한 사건사고나 피해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록 사진과 그 이미지들이 가져다주는 느낌을 통해 평택의 미군기지와 주민들의 피해를 이해한다. 뭔가 신속하게 파악하고 간결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이라 사람들은 좀 더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에 끌린다. 그에 비해 감시 활동 기록사진들은 잔잔하고 심심하며 조용하다. 그리고 사진에 담긴 메시지는 무겁다. 몇 번의 보고회로 미군기지로 인해 변화된 일상과 주민피해를 우리 생각대로 잘 공유할 수 있을까? 언제나 무거운 숙제다.

“춥다” 감시 활동 내내 이 소리만 반복했다. 이렇게 터벅터벅 걷는 걸음이 어쩌면 많은 사람이 동참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걷는다. 맹렬한 추위가 한 해의 끝을 장식하는 것도 모두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겨울이 꼭 추워야 하듯이 감시 활동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동참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정성이 필요할 것이다. 머플러를 다시 꼼꼼하게 매고 칼바람을 가로지르며 한 발을 내디뎌본다. 미군기지 주변 환경감시 활동은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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