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을 뛰어넘듯이
세상의 시련과 
난관도 뛰어넘는
지혜로운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 권혁찬 전 회장
평택문인협회

“산 높고 물 맑은 우리 마을에 새 울고 꽃피는 봄이 왔어요”

“한겨울 땅속에 잠자던 개구리 바스스 잠 깨어 뛰어납니다”

민속놀이이기도 하지만, 전통놀이가 더 어울릴 것 같은 고무줄놀이 하면 바로 이 노래가 떠오른다.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직접 해보진 못 했어도 어린 시절 여자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서 이 노래를 엿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도 그 맑고 천진하며 낭랑했던 가사가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참으로 정감이 가는 풍경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해마다 봄이 오기 시작하면 가사 첫머리를 흥얼거리며 오솔길은 걷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가 문득 피어난 개나리라도 눈에 뜨일까 싶으면 또 이 가사가 연상되기도 한다. 마당 가운데에서 팔짝팔짝 뛰면서 이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신이 나서 한참을 지켜보곤 했던 유년 시절이 생각난다.

국민 학교 3학년 때 이야기다. 우리교실 앞에서 4학년 누나들이 신나게 고무줄놀이를 하고 노는 것을 보고 있다가 너무 재미있어하는 나를 보고 “너는 이거 못하지”하고 한 여자아이가 놀려댔다.

당연히 고무줄놀이를 할 줄 모르는 난 심술이 나서 놀고 있는 고무줄을 끌고 달아나며 끊어 버리고 말았다. 아이들이 담임선생님께 일러바쳤고 잠시 후 4학년 선생님이 나를 4학년 교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잔뜩 겁에 질린 나를 교단에 세우고 엄한 벌칙을 내리셨다. 4학년 전체 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 용서하겠단 거였다.

수줍어 얼굴이 벌게진 나는 빨리 이 순간을 모면해야 하겠다는 생각뿐이었으므로 당시에 유행하던 맹호부대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그리고 4학년 선생님께서는 내 어깨를 두드리시며 참 잘했다고 오히려 칭찬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 40여 명이 넘던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은 고귀한 벌칙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봄이 되면 떠오르는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때의 기억을 회상한다.

많은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산 높고 물 맑은 우리 마을에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오면 항상 고무줄놀이가 떠올라 웃음을 짓곤 한다.

어쩌면 매년 봄 인생의 고무줄놀이를 반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또 봄이 오면 기억은 잘 나지 않겠지만, 이 두 가지 노래를 흥얼거리며 개나리 핀 오솔길을 걸어보고 싶다. 고무줄놀이 노랫말과 리듬에 맞춰 힘찬 발걸음을 더욱 경쾌하게 걸어봐야겠다. 어려운 일이 닥쳐왔을 때도 얇고 가느다란 고무줄을 넘으며 노래 한 곡이 끝나도록 발랄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이겨내야겠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도 마치 고무줄놀이를 하듯 깡충깡충 뛰면서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한 새해가 시작되었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밝아오는 임인년 새해를 고무줄놀이 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팔짝팔짝 고무줄을 뛰어넘듯이 세상의 시련과 난관들도 그렇게 뛰어넘는 지혜로운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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