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규칙한 혼란의 시대
식량은 생존과 안보의 문제다
쌀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쌀 시장 격리제 개선해야 한다

 

▲ 이상규 전 감사
평택농협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경제 시스템에 ‘불규칙한 혼란’이 생겨 필수품 가격이 오르고 많은 나라의 물가가 폭등하는 등 세계 경제에 악영향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얼마 전 ‘요소수 대란’을 보면 원자재를 보유하지 못한 나라가 겪어야 할 혼란과 피해는 심각했다. 한편, 기후 위기 등 다양한 위험이 존재하는 시대 인간이 먹고 살아야 하는 식량 문제는 그 어떤 상품의 거래와 비교할 수 없다.

위기의 시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충분한 식량을 보유하고 공급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생존과 안보의 문제이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경제 관료들은 식량을 단순히 일반 무역거래 상품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어 부족하면 사 오면 된다는 위험한 발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문제다.

2021년 오랜만에 찾아온 풍년으로 쌀 생산량이 2020년보다 약 10% 정도 증가했다.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필요한 양보다 많이 생산되면 가격이 내려가기 마련이다. 우리 농민들도 인정하고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적정가격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생산량이 조금만 늘어도 가격이 폭락한다. 정부는 2020년 ‘양곡관리법’을 개정하면서 그동안 쌀값이 떨어지면 농민들에게 떨어진 쌀값의 차액을 보전해주던 ‘변동직불제’를 폐지했다. 그 대신 쌀 생산량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거나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쌀을 사들이는 ‘쌀 시장 격리제’를 도입했다. 늦었지만, 올해 2월 우여곡절 끝에 2021년 초과 생산된 쌀에 대한 쌀 시장 격리제가 발동되어 정부가 쌀을 사들이는 공매를 진행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일반적인 경매나 공매는 값을 높이 써내는 사람이 낙찰 받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정부가 농민들의 쌀을 사들일 때는 가장 낮게 써내는 사람의 쌀을 사는 입찰 방식으로 진행했다. 일명 역공매 방식이다. 특히, 예정가격 또는 적정가격에 대한 사전 정보나 공지는 없었다. 이는 쌀값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시행된 쌀 시장 격리제가 오히려 쌀값 하락을 유도하는 정책으로 변질된 것이다. 쌀값 하락으로 실의에 빠진 농민들을 두 번 죽이는 행태이다. 참고로 이번 쌀 시장 격리제 공매에 참여한 평택지역 농민 또는 RPC 미곡종합처리장의 쌀은 단 한 건도 낙찰되지 못했다.

쌀 시장 격리제는 쌀 농업을 보호하고 쌀값 폭락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그러나 잘못된 공매 방식과 법 적용 방식은 쌀값 하락을 진정시키지 못했고 식량 안보 차원에서 쌀 농업 지속과 보호를 기대했던 많은 농민과 농업계의 기대를 외면했다. 반드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쌀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민족의 생명이다. 쌀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생명과 국민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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