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향토사학자 김해규 선생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역사도 기록을 해야 역사로 남습니다. 이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 세상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이름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디디며 길을 만들었습니다. 이름도 지었습니다.
흐르는 내 위에 작은 다리를 놓고는 ‘잔다리’라고 불렀고 조개를 잡아먹고 버린 조개무지가 있던 곳을 ‘조개터’라 불렀습니다. 오랜 세월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왜놈들이 이 땅에 들어오며 땅이름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은 500년 600년 전 지은 건물에 붙인 주소를 지금도  그대로 씁니다. 하지만 ‘재랭이고개’가 ‘자란로’로 바뀌었습니다. ‘비석거리’는 ‘비전리碑前里’가 되었습니다. ‘조개터’는 ‘합정동’이 되었지요.
1970년대 초 평택호방조제가 만들어지던 때까지만 해도 평택 통복리 시장 다리 밑에는 서해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던 고깃배가 묶여 있었습니다. 배를 띄우면 안성천을 따라 내리를 거쳐 아산만에 이릅니다. 그 무렵 평택호방조제로 바닷물길이 막히기는 했지만 팽성읍 노성리 갯벌에서 아이들 주먹만 한 밤게를 잡아다가 게장을 담가먹기도 하고 아산만 앞 바다에다 그물을 친 고깃배에서 전어회를 먹고 꽃게를 쪄먹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흘러 사람도 변하고 땅도 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역사는 대개가 다 위에서 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적 왕조王朝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배운 역사란 왕조를 외우고 연대年代를 외우는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한심한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식민사관도 생겨날 수가 있었습니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는 지역사와 생활사를 중심으로 작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힘 있는 자들, 가진 자들이 만들어 낸 역사만 역사는 아닙니다. 권력을 쥔 자들이 만든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역사만이 역사는 아니지요. 그래서 향토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기록에는 한 줄로만 적혀있는 역사를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개념정리가 이루어지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왕조실록’ 명종 때 단 한 글자로 남아있던 ‘임꺽정’이 홍명희의 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금자탑을 이룩한 ‘소설 임꺽정’이 쓰인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1989년 평택 한광중학교에 부임한 김해규 선생은 현대과학문명에 가린 채 아무 관심도 없이 사라져가는 향토문화와 지역사地域史 연구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지역사 연구란 시간을 들여 발품을 팔아야 가능할 일이기에 어느 누구도 나서기를 꺼려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역사에 흐름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 아니라 몸으로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구술을 철저하게 기록하는 객관적 접근을 통한 사료史料를 축적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계속 자료수집을 했습니다. 어렵사리 역사를 찾아 다녔지만 그 어느 누구도 동참하지 않았기에 덧없이 시간은 흐르고 그러노라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하니 백년 천년이 지나도 그리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지질학이나 천문학과 달리 역사를 기억하는 세대가 사라지는 안타까운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김해규 선생님에게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얼마만 더 지나면 일제 강점기 잔혹한 식민지 역사를 몸으로 살아온 세대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도 함께 사라질 것이지요.
김해규의 역사탐구는 2002년부터 평택지역 ‘평택시민신문’에 연재를 시작해서 2008년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평택의 마을과 지명 이야기> 1, 2, 3 권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평택지역 600개 마을을 이 잡듯 뒤져서 발로 쓴 가히 놀라운 기록이었습니다. 작은 내川가 모이고 모여 강으로 흐르고 바다를 이룬다는 것을 그래서 이름 없는 자들이 쌓아올린 ‘민중의 역사’야 말로 진정한 역사의 주류임을 실증적 자료로 입증한 지역역사 연구의 쾌거였고 지역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그리고 그 연구의 종착점에서 김해규 선생은 새로운 자신과 만납니다.
-나만이 안다
-나만이 옳다
-내가 최선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다 아류다 라고 생각하는 ‘문화 권력화의 탈피’가 바로 그것입니다. 김해규 선생은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그 동안 쌓아온 역사적 자료의 활성화와 실용화를 위한 연대連帶를 통해 ‘콘텐츠’를 나누고 협력해서 지역문화 발전을 공유하는 길이야 말로 진정한 역사를 이어나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 결국 교육을 망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아이들은 공동체 의식이 없고 책임감이 없다고 하지만 그런 관념적 사고가 결국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모는 요인이 된다. 아무리 세상이 험난하다고 해도 결국은 사람이다. 믿을 것은 오직 사람이다’
그렇게 김해규 선생의 인간사랑은 유별나고 남다릅니다. 그러니까 그의 향토사 연구가 바로 인간애에 바탕을 두었기에 가능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앞으로도 분명한 목표를 세워 역사연구와 활용에 새로운 길을 열어갈 김해규 선생의 인생철학과 교육철학에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아울러 2013년 3월 새로 발간된  <평택역사산책> 출간에 힘찬 박수로 축하드립니다.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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