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음악의 대표 주자 ‘시조창’

전통 음악 고수하려는 마음으로 시우회 조직
젊은이부터 노인까지 두루 즐길 수 있는 음악
평택의 주변 풍광이 어느새 시와 음악이 돼

 
시조는 원래 악곡의 종류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후대에 와서 시의 형식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국악계에서는 여전히 시조곡이나 시조창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으며 ‘시절가’나 ‘시절단가’ 등이 함께 쓰였던 점으로 미루어 시조라는 명칭은 ‘시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평택출신 근대 인물 중 한국농악협회 초대회장 유세기 씨가 <시조창법>이라는 책을 내 우리나라 시조창법을 체계화하는데 기여한바 있다. 평택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중단됐던 시조를 해방 후 다시 되살리자는 데 뜻을 같이 하는 20여명이 모여 ‘시우회’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에 박남규 씨를 선출한 뒤 시조창법 등을 후손들에게 전승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당시 평택에서는 허 홍 씨가 최초로 국립국악원에서 시조강습을 40일간 이수함으로써 평택군 시조창 계보를 잇는 선험자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92년 1월에 발족한 평택지부
한국전통예악총연합회 평택지부는 1992년 1월 1일, 시조창을 즐겨하는 회원들이 모여 창립했다. 김재경 씨가 초대회장을 맡았으며 1991년 전주대사습 시조부문 장원과 1992년 백제문화제 시조부문 대상을 수상한 평택출신 서정희 명인이 사범을 맡아 시조창 강습을 시작함으로써 평택의 시조창 보급에 힘썼다. 한국전통예약총연합회 평택지부는 2대 조성락·3대 홍응표·4대 김석경·5대 정중섭·6대 고광술 씨에 이어 현재는 7대 김석경 씨가 회장을  맡아 이어오고 있다.
1994년부터 매년 전국 단위의 남녀 시조경창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2012년 9월에는 제19회 전국 대회를 개최했고 1995년 평택시와 평택군, 송탄시 등 3개 시·군이 통합되자 한국전통예악총연합회 평택지부는 신장 2동 275-1번지 3층에 입주해 본격적인 강습을 시작했다.
한국전통예악총연합회 평택지부 김석경(85) 회장은 “일반적으로 시조창이 어렵다고들 생각하지만 시조창은 긴 호흡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폐활량이 커지고 창을 하다 보면 음을 알아가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다”며 “젊은이들에게는 정적인 정서를 함양할 수 있게 하고 나이든 사람에게는 정적인 가운데 무리하지 않고 건강을 지킬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30대부터 80대까지 폭넓은 회원 층을 갖고 있는 한국전통예악총연합회 평택지부는 현재 40여명의 회원들 대부분이 큰 대회 수상경력을 갖고 있으며 강사로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전문성을 겸비했다는 점이 큰 자랑이다. 특히 고광술·김종화·김석경 등은 각종 전국경연대회 국창부에서 각각 장원을 수상하는 등 대외적으로 많은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전통예악 중 시조창은 문학적 음악
전통예악 중에서도 시조창은 문학적인 음악이며 대중적인 시조창은 삼장 육구체로 구성돼 있다. 현재는 국악의 분야도 세분화 돼 가야금이나 판소리, 민요 등 많은 국악인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국악을 한다하면 일반적으로 시조인들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시조에 가락을 붙여 노래로 읊는 시조창은 정적인 가운데 음을 따라가 정서함양과 심신 수양에 탁월하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버지와 아들,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불러도 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평택에 시조창의 맥이 이어지게 된 것은 시우회가 조직되고 김한식·박남규·유기·박상만·김종화·박득묵·김재경·조성락·홍익표·허 홍 씨 등이 회장에 취임하면서 열과 성을 다해 시조보급에 힘써왔기 때문이다. 특히 송탄에는 홍언후 회장을 비롯해 이남용·고광술·남상숙·홍응표 씨등이 시조창의 맥을 이었다.
서정희 명인의 사사를 받은 제자들 중에는 전국시조경창대회 국창부 총리상수상, 대사습 장원, 대상 등을 수상하며 평택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기도 했다.
한국전통예악총연합회 평택지부는 1992년 11월 평택농민회관에서 제1회 시조발표회를 가졌으며 2002년 9월 남부문예회관에서 2회 발표회를 가졌다. 3회 발표회는 2005년 7월 남부문예회관, 4회 발표회는 2009년 5월 북부문예회관, 5회 발표회는 2012년 9월에 북부문예회관에서 개최했으며 2007년 5월부터 찾아가는 공연을 통해 시민들과 시조창에 대한 감흥을 나누고 있다.

깊이 이해해야 제 맛 느끼는 시조창
“다른 음악은 1년 정도만 해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시조창은 10년 해야 제대로 구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전통의 소리이고 선조들의 마음을 담은 시조에 가락을 붙인 것이기 때문에 시조를 천천히 부르다보면 가사를 이해하게 되면서 감동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이런 차분하고 정적인 것에 음악이 가미 돼 있어 요즘은 학생들에게도 많이 보급되고 있습니다”
김석경 회장은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치세음악과 난세음악·망국음악으로 나뉘는데 시조창은 치세음악에 속하는 것으로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들을 어질게 다스리는 음악으로 분류된다고 말한다.
시조창은 시조시의 아름다움을 개인의 창법에 따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특히 전통문화 활동이 왕성했던 평택에서는 1940년대에 150여명의 한시 동호인들이 평택호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마안산에 올라 평택팔경을 예찬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람들의 인정을 절절한 심정으로 표현해내는 등 어느 지역보다 한시를 짓는 풍류를 즐길 줄 알았다. 장군형상으로 우뚝 선 영웅바위와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면서 각종 곡물과 수산물이 풍성했던 계양진, 평택호방조제공사로 지금은 사라진 계두봉 등 주변에서 흔히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 어느새 시가 되고 시조창으로 읊어졌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시조에 대한 열의가 다소 감소된 시조창, 사회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느리게’라는 것이 사회의 화두로 제시되는 요즘 슬로우음악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조창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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