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의 화합을 위해 노력할 터”

 

27년 간 효명중고교 재직
63·65·66대 진위향교 전교

 

 

“지역에서 존경받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모범생, 월남에 가다

안석준(76세) 진위향교 전교는 진위면 마산3리 와곡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터를 지키고 있다. 그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심은 느티나무는 현재 보호수가 되어 함께 마을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께서 서른둘에 저를 낳았습니다. 당시로써는 굉장히 늦은 나이에 자식을 낳은 것이었죠. 그래서인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느티나무는 늘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라는 의미에서 심어주셨는데, 보호수가 된 지금도 매일 나무 아래를 쓸며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그는 힘든 형편에도 부모님의 헌신 덕에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는 이들이 허다했던 시절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었다.

“학창 시절엔 굉장히 활동적이었습니다. 고교 시절엔 학생회 총무부장을 맡았는데 장학금을 조성하기 위해 전교생과 함께 폐지 모으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죠”

졸업 후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가 군에 입대한 한석준 전교는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데다 어린 시절 서예를 배운 덕에 글을 곧잘 써 상사들의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빨리 집안에 도움이 되고 싶었고, 해외를 경험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기에 월남 파병을 결심했다.

“우연히 알게 된 아버지가 훈련부대가 있던 춘천까지 따라와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월남으로 떠났죠. 다행히도 1년 2개월 간 파병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모교에서 일하다

1970년 11월에 전역한 안석준 전교는 이듬해 4월 아내와 결혼했다. 그 무렵 4-H회 활동으로 인연을 이어온 친구의 추천으로 재건국민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안석준 전교는 이후 1974년도부터 평택군 공보실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맡은 업무는 평택의 모든 마을을 돌아다니며 반공교육을 하는 일이었다.

“6년 간 평택의 모든 마을을 돌아다녔습니다. 당시 366개 마을이 있었는데, 가보지 않은 마을이 없을 정도였죠. 매일 밤늦게 집에 가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군청에서 목소리가 좋기로 소문이 나 행사가 열리면 사회를 도맡기도 했죠”

공직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그는 1981년 돌연 자신이 졸업한 효명중고등학교 서무과에서 일을 시작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당시 교감선생님이셨던 김우룡 선생님이 교장으로 계셨는데, 만나기만 하면 학교에서 함께 일하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국 오랜 설득 끝에 학교 서무과 계장으로 일을 시작했죠”

안석준 전교는 무엇보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조직의 병폐를 없애기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였다.

“예전에는 여직원들이 결혼을 하면 사표를 내는, 일종의 관행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관행이 부당하게 느껴졌고, 학교법인이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에 찾아가 대책 마련을 부탁했습니다. 이후 관행이 사라졌고, 여직원들도 결혼 후 계속해서 근무할 수 있게 됐죠”

 

진위향교를 이끌다

2007년 12월 31일에 퇴직한 안석준 전교는 2009년부터 순흥 안씨 제3파 진위종중회장을 맡게 되면서 진위향교 행사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효명중고교에 재직할 당시 인성교육을 나온 향교 관계자들을 안내하며 오랜 기간 인연을 쌓아온 덕에 향교 내부 조직에서 빠른 시간 안에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결국 2011년도에 63대 전교를 맡게 됐습니다. 65대에 들어서 또다시 제가 전교를 맡게 됐고 현재 66대 전교까지 지내면서 오랜 기간 진위향교를 지키고 있죠”

안석준 전교는 진위향교의 가장 큰 숙원사업이었던 교육관 재건 사업을 무사히 마치기도 했다.

“열심히 발로 뛰어다녀 시비와 도비를 지원받았습니다. 당시 메르스로 인해 준공식을 열지도 못했지만, 진위향교를 알리기 위한 교육 활동을 펼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죠”

안석준 전교는 무엇보다 유림들이 화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임기가 끝난 뒤에는 후임자가 향교를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전대 전교님들이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향교에 나와 일을 돕고 계십니다. 저도 이 분들을 본받아 임기가 모두 끝난 뒤에도 진위향교를 위해 봉사하고 싶어요”

종중과 향교,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어른이 되기 위해 지금도 매일 일기를 쓰는 등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력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안석준 전교가 지역사회의 존경받는 어른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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