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세상의 끝에 서는 날이 올지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전하고 있다

 

   
▲ 임윤경 대표
평택평화센터

14년 전 생때같은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산수유가 노랗게 피어나던 봄날, 사고는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아들의 죽음은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긴 시간 방황했고 벼랑 끝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내 곁을 조용히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말없이 곁을 지켜낸 이들의 힘으로 나는, 먼저 간 아들을 온전히 가슴에 묻을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아 다큐멘터리 ‘세월’을 본다.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을 진행하는 세월호참사 유가족 유경근 씨. 그가 녹음 스튜디오에서 앉아 세월호 참사 전후로 존재했던 수많은 사회적 참사, 그 유족들과 만난다. 2003년 대구지하철화재참사 고 한상임 님의 어머니 황명애 씨, 1999년 씨랜드화재참사 고 고가현, 나현 님의 아버지 고석 씨, 1987년 고 이한열 님의 어머니 배은심 씨. 유족들은 저마다의 일상에서 재난 ‘이후의 삶’을 들려준다.

하늘 아래 오직 두 사람을 위한 듯 작은 스튜디오 안. 그곳에서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는 방송이 ‘세상 끝의 사랑’이다. 참사의 어마어마한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편안히 듣게 되는데 유가족들의 대화가 주는 이상한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쪽은 나보다 젊어 당했으니 더 오래 힘들겠구먼” 35년 전 아들을 잃은 팔순 여인이 8년 전 딸을 잃은 중년 남자에게 덤덤하게 건네는 말에는 섣부른 위로도 게으른 충고도 담겨있지 않다. 그저 진실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대화 속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두 사람의 떨림과 침묵을 마주한다.

몇 해 전 세월호 유가족들의 뜨개 전시회에 갔다. 아이를 떠나보낸 엄마들이 모여 함께 뜨개질하며 엮어낸 작품들. 알록달록 털실의 뭉치는 기억의 뭉치가 되어 지나가는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뜨개질을 하며 얼마나 많은 한숨과 슬픔, 기막힘, 아픔을 엮어냈을까. 고요하게 마주 앉아 외로움을 달랬을 엄마들 모습이 다큐멘터리 ‘세월’을 보며 문득 떠올랐다.

‘세월’의 가장 뭉클했던 장면은 오월 어머니들을 만나러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주로 내려갔을 때 이야기다. 오월, 한 번도 찾아가지 못한 죄송한 마음의 세월호 유가족을 오월의 어머니는 “내가 다 안다”며 조용히 안아준다. 그 순간 세월호 어머니들은 오열한다. “내가 다 안다” 재난 이후 네가 겪었을 그 긴 이야기들을 우리는 다 안다. 힘들고 많이 외로웠음을 우리는 다 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고통을 나눌 수 없음을 우리는 다 안다.

내가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내 곁에 다가와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나와 함께 일어서 나아가 줄 누군가를 상상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큰 힘이 된다. 만약 당신이 세상의 끝에 서는 날이 올지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말을 이 영화는 전하고 있었다. 진한 연대의 목소리와 공감이 담겼다.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 공감과 연대라고 생각한다. 고통을 나눌 수 없는 사회에서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 “왜 고통스러워?” “무슨 도움이 필요해?”라는 게으른 물음보다 곁을 지켜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고통을 겪는 이들과 그 곁을 지켜내는 이들의 고통을 마주하며 여덟 번째 4월 16일에 닿고 싶다. 연대와 공감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다큐멘터리 ‘세월’을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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