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는 약 46년 전 전 성간(星間)의 무를 떠다니던 가스와 먼지의 거대한 성운(星雲) 속에서 탄생한다. 애초에 지구는 깊은 어둠에 감싸인 행성이었다. 태양에서 온 빛이 지구에 닿자 지구에도 낮과 밤이 생긴다. 지구를 덮은 최초의 밤은 깜깜했을 것이다. 세상을 뒤덮은 그 깜깜함이 검정색의 원형이다. 최초의 밤이 도래했을 때 지구에는 아직 인류가 나타나기 전이다. 따라서 그 밤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밤의 심연만이 몇 시간 동안 이어지다가 날이 밝았다. 해가 기울자 다시 밤이 찾아온다. 밤이 어두워지는 것은 빛을 뿌리는 태양의 사라짐 때문이다. 낮의 소멸과 함께 오는 밤은 낮의 미망인이다. 밤이 오면 야행성 동물들이 비로소 움직인다. 밤은 부엉이나 박쥐, 고양이나 여우원숭이와 같은 야행성 동물에게 활동하는 자유를 준다. 호랑이나 표범과 같은 커다란 고양이과 동물들도 주로 밤에 사냥을 한다. 반대로 식물들은 광합성 작용을 하지 않고, 성장은 완만하게 느려진다. 사람들은 밤하늘이 어둡고 캄캄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주는 어둡다. 밤하늘은 역설적으로 어둡기 때문에 무수한 별들이 빛의 향연을 벌일 수 있다.

별들의 향연은 우주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느끼게 한다.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비단 우주의 크기만은 아니다. 그 안에 가득 찬 천체들 또한 그러하다. 어떤 은하보다 밝게 빛나는 퀘이사quasar, 한 숟갈 정도의 원자 무게가 수천 톤의 고밀도로 이루어진 중성자별, 초신성supernova의 폭발에 의해 생긴 재가 빠르게 회전 운동을 함으로써 엑스선이 전파 망원경의 스피커를 통해 메트로놈처럼 주기적으로 딸깍거리며 방출되는 펄서pulsar, 충돌하는 은하colliding galaxies, 별들의 흐름을 삼키는 거대한 블랙홀black hole, 어마어마한 수의 적색거성red giant star, 그리고 어딘가에는 불가지(不可知)한 고도의 외계문명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천체들은 까마득히 멀어서, 빛조차 그곳에 이르려면 수백만 년은 걸린다. 아마도 우리가 도착할 때쯤 이미 ‘그곳’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바뀌어 있을 것이다.

“밤하늘은 온 사방에 보이지 않게 드리워진 무한히 깊은 심연으로 난 창이다. 분명 이 장관 속에도 보잘것없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아무리 하찮고 초라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또한 우주의 기적 같은 실재의 일부라고 하는 바로 그 알량한 지식보다 심오하다. 밤하늘의 별들은 우리를 압도하는 동시에 자극한다. 그들은 운명이자 신이다. 그들은 우리들의 인생에 전혀 개의치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우주먼지에 불과하다.”(크리스토퍼 듀드니, ‘밤으로의 여행’, 연진희·차세진 옮김, 예원미디어, 2008)

밤하늘은 그냥 캄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수없이 많은 별들과 은하로 채워져 있다. 별들과 별들 사이, 은하와 은하 사이로 어둠이 흘러간다. 우주 공간은 무한하고, 그 무한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다. 우리는 이 우주 속에서 태어난 ‘우주먼지’들이다. 우리는 우주를 가득 채운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영향 아래에서 살아간다. 사람은 ‘우주먼지’와 같이 아주 작은 존재일지 모르지만 살아 있는 사람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우주적 심연이다. 사람은 심연이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되는 존재다. 우주는 하늘, 땅, 사람으로 이루어졌다. 하늘이 생기고, 다음에 땅이 생겼다. 사람은 마지막에 나타난다. 천문학에서 천구(天球)라고 부르는 하늘은 달, 혜성들, 중성자별, 적색왜성, 백색왜성, 은하, 거대한 블랙홀을 거느리고 있다. 선사시대 이래로 인류는 하늘에 매혹 당한다. 하늘은 무수한 신화 속에서 신들의 고향이고, 매우 숭고한 형이상의 세계를 표상한다. 인류는 하늘에서 초자연적 존재들을 느꼈다. 하늘이 보여주는 여러 색감들은 확산 일사광의 결과물이다. 맑게 갠 낮에는 푸른색이고, 일출과 일몰의 때는 밝은 주황색이며, 밤의 하늘은 검은색으로 변한다. 하늘은 달과 태양, 무수한 별들과 온갖 행성들이 일정한 궤도에 따라 움직이는 푸른 궁륭(穹窿)이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존 키츠는 밤하늘을 “아치형 흑단 천장/사랑이 펼쳐진 차양”이라고 노래했다. 밤하늘에서 유난히 밝은 빛으로 반짝이는 별인 오리온자리에 속한 리겔은 지구에서 9백 광년 떨어져 있고, 그 별빛이 지구에 닿기까지 9백년이 걸린다고 한다. 지금 보는 그 별은 인류 역사에서 중세시대 때의 별이다. 신비하지 않은가? 지금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별들 중 일부는 이미 블랙홀 속으로 사라져 없는 별일 수도 있다. 그런 신비 속에 사는 사람들 하나하나는 귀중한 “하늘의 우주의 악기”(이성선)다. 열정을 잃는 비극과 열정을 품는 비극 사이에서 뜻있는 인생은 욕망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 악기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일로 이루어진다. 행복은 우리가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그 순간 우리를 찾아올 지도 모른다. 바쁘더라도 가끔은 하늘을 보며 살자.

평택시사신문 독자들께는 아쉽게도 이번 칼럼으로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곧 한 방송사와 ‘장석주의 지중해 인문학 기행’ 촬영을 떠나게 되어 부득이하게 칼럼 원고를 중단합니다. 지난 여섯 달 동안 이 칼럼을 아껴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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