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야·바다의 특징 고스란히 담은 ‘평택의 민요’
보존과 계승 노력 더해져 평택 전통의 소리를 이어가다

▲ 제5회 소사벌백중놀이당시 평택두레놀이 복원 시연 장면(1989년)
평택은 대단위 평야지대를 갖고 있어 농사를 주로 지었으며 또한 서해안에 인접해 평택항이 건설되기 전까지는 여러 포구를 중심으로 어업이 발달했다. 평택민요는 분포 면에서는 조흥·권면·인생무상·풍년기원·충효·연정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요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특히 풍년을 기원하며 부르던 모내는 소리와 논매기 소리가 많이 전해지며 또한 해학·풍자·놀림·유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만가는 노동요 다음으로 많은 분포를 나타낸다.
평택지방 민요의 흐름은 노동요와 의식요 등에서 받는 소리가 필수적이다. 평택지역의 특수한 후렴으로는 논매기 소리의 ‘얼카뎅이야’와 ‘흥개 방개가 논다’, 만가 중 ‘어거리 넘차 너호아’와 지경소리의 ‘이혀라 지장호’ 등이며 대체로 반복되는 형식이 두드러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 제16회 경기도민속예술축제 평택시 대표로 출전, 농요 시연 장면(2007년)
농사짓던 민중들의 삶 ‘농요’
평택에서 발달한 농요는 농사철 적기에 일시적으로 참여한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불리던 소리로 농사의 풍요와 관련이 있는 각종 제의 및 민속놀이 등에서 많이 불렸다.
모내는 소리와 논매기 소리·비단타령·자진 논매기 소리 등 농사철 힘겨운 노동의 피로를 여흥으로 달래주던 농요는 수십 명의 두레꾼들이 북 장단에 맞춰 일제히 노래를 불렀으며 방개소리·상사소리·에헤요 소리·올라가세 등이 전해진다.
김을 매거나 애벌매기에서 세벌 김매기가 끝나는 날까지 이어졌던 두레소리는 협동심을 일깨우고 힘을 북돋우는 소리로 널리 불려왔으며 특히 포승두레소리는 형식과 내용으로 볼 때 향토색이 짙고 가락이 다양해 흥겹고 절로 어깨춤이 나올 정도의 신명이 담겨있다. 4월부터 6월 사이에 불리던 노래로 농부·용두레·새참 내는 아줌마·소리꾼과 풍물패 등의 노래가 있다.
봄철, 목청 좋은 선소리꾼이 독창으로 ‘모내는 소리’를 선창으로 매기면 여러 사람들이 합창으로 후렴구를 받는데 물을 댄 논에 모춤을 흩어놓으면 농민들이 풍물 장단에 맞춰 들어와 일렬로 늘어서서 모를 심고 북잡이는 논에 들어서서 왔다 갔다 하며 북을 치게 된다.
모심기가 끝나고 벼가 자라면 논을 매는데 이때도 두레가 이뤄져 풍물과 농기·영기 등을 만들어 행진곡 삼아 부르며 논으로 간다. 논에 이르면 쇠잡이 몇 사람이 풍물가락을 치는 가운데 농민들은 느린 굿거리장단에 맞춰 소리를 한다. 보름 후 호미로 초벌을 맬 때 새참 아주머니들이 막걸리나 부침개·밥 등을 논으로 내오면 새참 먹은 뒤 쉬는 잠깐 사이에 자진모리로 시작되는 비단타령을 부르며 놀이를 하고 또 보름 후 두벌매기를 할 때도 선소리와 후렴구 제창은 이어지며 잠깐 쉬는 시간에는 작대기로 상여놀이를 하면서 힘든 일을 잊는다.
이로부터 보름 후에 하는 만물매기 때는 느린 동작으로 두 패로 나뉘어 기러기 모양으로 원형을 만들고 휘모리장단에 맞춰 ‘영차 영차’하며 두 손을 번쩍 들어 끝내기 신호를 한 후 춤을 추며 논다.
평택의 두레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이민조 선생은 포승읍 방림리 출신으로 모심는 소리·회심곡·지경다지는 소리·상여소리·회다지 소리 등을 어려서부터 듣고 따라 배웠으며 장성하면서부터 상쇠를 물려받아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이웃마을까지 불려 다니며 소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민조 선생은 집안어른들인 이택서·이민상·이요헌 등으로부터 소리를 배웠으며 이원보·이돌천·최은창에게는 농악을 배웠고 김기복·황홍협·안창선·김익수 등과는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 평택민요 어로요 발굴 시연(2009년)
평택의 어업을 말해주는 ‘어로요’
평택 어로요는 경기남부지역에서 전승되는 거의 유일한 어로요며 강화나 옹진지역 어로요와는 음악적으로 구별된다. 서해 포구를 중심으로 발달한 평택 어로요는 경기 도당굿을 대표하는 지영희 선생의 고향인 포승읍 경기만 일대에서 불렸는데 특히 신왕리에서 불리던 어로요는 전국에서도 보기 드물게 매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평택 어로요는 고기잡이배가 바다로 나가는 과정부터 고기 잡을 때, 포구에 도착해 생선을 사려는 사람들과 흥정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서해안에서 특히 많이 불리던 닻 감는 소리는 배를 정박하거나 내렸던 닻을 위로 감아올릴 때 부르는 소리로 간만의 차가 심해 선착장에 배를 댈 수 없는 서해안에서 갯벌에다 배를 정박시키거나 바다로 출항하면서 부르던 노래다. 매기는 소리는 대체로 사설 적이거나 가락이 제법 들어있지만 받는 소리는 힘을 모으기 위한 단조롭고 짧은 가락으로 이뤄져 있다.
배치기는 만선으로 귀향하거나 풍어놀이를 할 때 부르는 소리로 다른 어로요에 비해 유희적 성격이 강하다. 북·장고·징 등의 반주악기가 곁들여지고 춤까지 동원되는데 이는 놀이를 위한 소리이기 때문에 매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가 모두 자연스러운 가락으로 흐르며 일반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어렵고 고도로 승화된 예술적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이 보통이다.
평택은 어영애 씨를 비롯한 50여명의 평택민요보존회 단원들이 전국에서도 유일하게 전곡이 남아있는 신왕리 어로요를 비롯해 평택의 민요를 계승하기 위해 평택호관광단지 한국소리터에서 1주일에 한차례 회원 및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습을 진행한다.

▲ 평택민요 장례요 예능보유자 박용철 옹 작고시의 상여소리(2010년)
의식을 거행하며 부르던 ‘의식요’
의식을 거행하며 부르던 의식요는 그 기능이 의식의 수행과 직결된다. 성격에 따라 세시의식요·장례의식요·신앙의식요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세시 의식요는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생활하는 가운데 재앙을 극복하고 다복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안택노래·서우풀이·풍신제노래·농신제 노래·달맞이노래와 같은 가정 의식요와 지신밟기·고사반·걸궁노래·서낭숙노래·기우제노래·뱃고사 노래·용왕제노래 등과 같은 마을 의식요가 있다. 평택에는 지신밟기에 해당하는 지경소리와 고사반 같은 마을 의식요가 남아있다.
장례의식요 중 상여소리는 장례 때 망자를 상여에 싣고 장지까지 운반하며 부르던 노래로 선창자가 요령을 흔들며 민요가사를 선창하면 상여를 맨 사람들이 후렴을 받는다. 달구질 소리는 장례 때 망자를 땅에 묻고 달구질을 하면서 부르던 노래로 묘를 축조한다는 점에서 노동기능도 갖고 있으나 장례의 중요의식 중 하나로 죽은 자의 무덤을 산자들이 함께 밟고 저승길을 축원하는 의식적 요소가 더 강하다. 매기는 사람이 북을 치며 노랫말을 선창하고 달구질하는 사람들은 달굿대로 묘를 다지면서 합창으로 따라 부른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부녀요’
여성민요 중 가장 대표적인 노래는 ‘시집살이 노래’로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고된 삶에 대한 한탄과 의지로 보편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 갓 시집온 새색시의 사연을 담고 있는 시집살이 노래는 시집 식구들의 몰인정한 대우를 참거나 때로는 지혜로 시부모의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고 구비문학 형식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평택의 민요에도 이러한 부녀요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시집살이요를 비롯해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한이 배어있는 물레타령이나 방아타령·베틀노래·자장가·애 어르는 소리 등이 대표적으로 전해진다.

▲ 제16회 경기도민속예술출제 평택 포승두레소리 출연 단원들(2007년)
한편, 평택민요는 1984년 중반 평택문화원에 의해 처음 발굴·전승된 이후 매년 평택군민의 날에 시연 했으며 2007년 제16회 경기도민속예술축제에 출전해 우수상을 수상한 후 2009년 경기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농요’는 포승읍 방림리 이민조 선생이 김매기 등 모내기 과정 재현으로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됐으며 ‘어로요’는 현덕면 신왕리 이종구 선생이 고기잡이를 위한 출항에서 판매까지의 전 과정 재현으로 지정됐다. ‘장례요’는 지난 2010년 8월에 작고한 포승읍 홍원리 고. 박용철 선생이 상여소리 등 장례민요로 지정됐으나 현재 예능보유자가 없는 가운데 단원들이 전승해나가고 있다. 평택민요보존회는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8호 평택민요 보유단체로 한국소리터 평택농악마을에서 상설공연 등을 통해 평택민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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