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환기

지난 31년 이라는 세월 살아왔던 고향이 그립다. 고향을 떠나 나그네 삶속에 어연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중국으로 또 태국으로… 이렇게 삼국을 거쳐서 오늘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먹고살기 힘들 때는 사람은 도시 살고 소는 산으로 가야 한다는 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맞더라고 느껴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시내서는 그럭저럭 사는데 시골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야단이었다.
자고 깨면 어디서 누가 굶어죽고, 어느 농촌에서는 엄마가 애기를 잡아먹고, 어느 길에서는 군인이 길가는 장사꾼을 죽이고… 끔찍한 현실 속에 정말 한동안 무섭기도 하지만 사느라고 그런대로 감수하며 살았었다. 버려지는 애들이 많아지고 죽어가는 애들도 많아지고…
어느덧 1년, 2년 이런 현실이 습관처럼 느껴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장사를 하기 시작하고 먹고 살기위해 온갖 여러 가지 방법이 살포되고 적용되고…  등치고 간 빼 먹고… 그러는 중에도 좋은 사람들은 있었다.
당시는 온 집안 식구가 하루 두 끼 먹고 살기도 빠듯했다.
엄마는 전문학교 식당에서 일하시면서 조금씩 쌀을 대주셨다. 먹는 것도 먹는 것이지만 땔감이 문제였다. 남자손이 그리운 우리 집은  막내가 그래도 아들이라고 30여리나 떨어진 곳에 산으로 들어가서 겨울에는 땔감을 담당하였다. 그때 동생 생각을 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언 손을 호호 불며 길이 1.5미터 되는 통나무 덩굴 같은 것을 끌어내려오는데 너무 늦으면 나나 동생들이 마중 나갔었다. 그때 동생들이 불쌍해 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나는 그래도 어지간히 자라서 이런 고충을 겪지만 동생들은 어린 나이에 아빠도 없이 너무 고생하였다.
당시에 세 비가 많이 죽었다고 한다. 장사를 알지 못하는 교수나 지식인 계층들인 ‘선비’, 부모가 없거나 부모에게서 버려진 아이들인 ‘꽃제비’, 몸 파는 아가씨를 일컫는 ‘청제비’다.
그나마 시내에 살면서 장사를 하면서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에 계시는 이모님들로부터 한 장의 편지와 사진이 왔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북한의 실태를 들으시고는 좀 도와줘야겠다고 연락을 보내주셨다.
그때부터 나에게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환상이 되었다.
중국으로 ‘친선다리’가  열리고 서서히 통행이 허락되면서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통행증인 도강증을 뗄 수가 없었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 어머니 쪽으로 중국에 계시는 친인척을 다 제거해 버렸다. 집안에 중국 친척이 있는 것은 성분이 나쁜 것이라 자신이나 자식들의 앞길에 지장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그때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중국에 친척방문하면 그래도 생활이 펴이는데. 그 줄을 끊어놓으신 아빠가 한스러웠다.
궁리궁리 중에 밀수꾼들을 통해 중국으로 가는 통로를 알게 됐다.
어느 날 나는 그 누구도 모르게 압록강을 건넜다. 한편으로는 생사를 걸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공하면 설전으로 다시 고향에 돌아가 빚도 다물고 다음해 또 가정을 이끌고 살아갈 생각을 하면서 11월 초의 찬 압록강을 부지중 건넜었다.
다행히 탈출에 성공해 나는 난생처음 보는 이모와 큰어머니 외삼촌 등 여러분들을 만나게 됐다. 당시는 탈북이라는 단어도 몰랐었다. 그저 먹고살기 힘들어서 중국에 계시는 친인척분들의 도움을 받으러 갔었다.
이것이 내 인생의 전환기였다.
나는 중국에 와서 세상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됐고 그동안 우리는 북한체제에 속고 살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됐고 또 중국에서 대한민국사람들이라고 원수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을 만나보게 됐다. 너무나 친절하고 사람냄새가 나는 사람다운 사람들이었다. 그보다 먼저 접한 것이 KBS사회교육방송이었다.
방송을 통해서 내가 알고 있던 남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라는 것을 느꼈었고 한반도 인으로서 세계의 자랑이라고 생각됐다.
이렇게 세상을 알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깨닫고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 소통하면서 나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알게 된 대한민국을 사모하면서 어느 날 그 땅에 발을 딛고 산지도 5년이 되어온다.  어렵고 힘든 날들이었지만 그날들이 있어서 그동안 삶의 더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 내가 참으로 행운아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 오늘도 살아간다.

 

이 글은 북한이탈주민이 평택지역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하거나 느낀 점을 본지에 보내온 것입니다. 경기남부하나센터(656-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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