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이 다가와도
어머니 자리를 대신할
권위는 없다

 

 

   
▲ 정재우 대표
가족행복학교

내가 미처 철이 나지 않았을 때 나는 은근히 어머니를 무시했었다. 사춘기의 소년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였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끼고 끙끙거리며 내 어머니는 왜 데미안의 어머니같이 생각을 안 할까 고민했었다.

훗날 어머니의 청소년기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나고야에서 그 시기를 보낼 때 얼마나 발랄한 문학소녀였는지를.

요즘에 와서 다시 어머니 자리를 생각해 본다. 오십 대 중반에 하늘의 별이 되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 자리를 몹시 그리워한다. 자식은 생래적으로 어머니 자리가 본향이다. 어머니가 계신 곳이 나의 우주의 중심이다.

군대 다녀온 바로 아래 동생은 일 년여를 백수로 지내며 어머니 속을 많이 타들어 가게 했다. 막냇동생은 해군 입대 후 보초 설 때마다 통지를 해 와서 어머니는 철조망 개구멍으로 간식을 들여보냈다고 했다. 훈련 시 배고플까 봐. 훈련병들이 군부대 밖으로 행군을 나올 때는 다른 어머니들과 같이 행렬을 따라 뛰었다고 했다.

그런 어머니 자리를 잃던 날 동생들과 나는 억수로 많이 울었다. 외교관으로 중동에 나가 있던 장남인 형은 늦게서야 달려와 빈소에 머리를 조아렸다. 형이 어릴 적에 수술을 여러 차례 받고 나서야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는 어머니의 사연을 이모님들이 들려주었다. 그런 큰아들에 대한 남다른 어머니의 짝사랑을 전해 듣고 비로소 목청 놓아 대성통곡하던 형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머니 자리, 이제는 우리들 가슴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리워할 대상이 있기에 다행이 아닌가? 어머니 떠나시고 몇 해 동안 집안의 축이 무너지고 기둥이 빠져나간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어머니 자리였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자리를 아예 포기하는 많은 예비 어머니들을 보며 마음이 불편해진다. 결혼과 자녀를 갖지 않겠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가 없다. 우린 누구나 어머니를 통해 세상에 왔고 어머니 자리로 인해 사람으로 성장해 왔기에. 시대적 상황이 젊은이들에게 절대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순리를 따르는 것이 세상을 지속해 나가는 원리이다. 더 많은 젊은 세대가 미래의 불안 요소로 인해 가정을 포기하고 가족 만들기를 아예 포기한다면 세상은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이 나라는 스스로 해체되고 말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어머니 자리가 있어 행복하고 그 행복으로 삶을 이어 간다. 순혈주의를 극복하고 입양해 자녀를 키우고 가족을 형성한 가정은 참으로 복되다. 누군가에게 어머니 자리를 만들어 주었기에. 새로운 세대, 새로운 세상이 다가와도 어머니 자리를 대신할 권위는 없다. 모든 여성에게 주어진 특권이요 특혜다. 이 기회를 포기하지 않는 나의 후세들이 되기를 가정의 달에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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