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블루스는
진행형이다

 

 

   
▲ 정재우 대표
가족행복학교

영옥은 폭풍눈물을 쏟아낸다. 언니 영희의 그림이 전시된 버스를 개량한 주택 안에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15화의 한 장면이다. 비현실적인 드라마 속 이야기이지만, 사실일 수도 있는 사연이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언니 영희와 언니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멀리 제주까지 흘러와 물질하는 해녀 영옥의 이야기다.

드라마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 블루스를 담아내고 있다. 블루스는 사람들의 상처를 의미한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는 말처럼 등장인물들의 블루스는 꼭 우리 이야기 같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이런 블루스를 안고 사는 까닭에 서로를 품고 토닥인다. 위로의 눈길과 손길로 서로를 보듬는다. 마치 제주의 청정바다와 같은 사람들이다.

해녀들은 영옥이가 왜 목숨을 걸고 물질하는지 이해하고 그녀를 지켜주기로 한다. 선장도 영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언니 영희를 진심으로 대한다. 다운 증후군이라고 밀어내지 않는다. 얼마나 멋진가.

사람들의 선입견을 깬 사건은 영희에게 그림 그리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누구도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희는 자신을 알았다. 화가였던 부모님을 닮아 자기는 그림을 좋아하고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영희는 유난히 주변의 사람들을 그리기 좋아했다. 그래서 그들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다. 사람들은 기대하지 않았다. 영희는 밤중에 일어나 아무도 모르게 스케치북에 그들의 표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동생 영옥도 언니가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도 그리 알고 실망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언니가 제주를 떠난 후 선장이 정성스레 전시해 놓은 언니의 그림을 처음 접하면서 대성통곡을 한다.

필자도 따라서 울었다. 먼저 특이하고 멋진 인물화 그림에 놀라고 감동되어서 울었다. 그리고 영옥과 같은 자신을 발견하고 울었다. 영옥은 그동안 언니를 위해 산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언니를 버리려고 했고 기피하고 무시하고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 눈물의 의미가 나에게도 다가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장애를 가진 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무관심했던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의 무관심은 그들뿐이겠는가? 노후를 돌봐줄 가족 없이 홀로 살아가는 노인들, 생명을 걸고 탈북해 남쪽에 정착하려는 자들, 자기들 고국을 떠나 온갖 냉대와 차별을 겪는 난민들, 더욱 나은 환경을 찾아 이주해온 외국인들, 아직도 외국인 취급을 당하는 다문화가정들, 그 외에도 숱한 사회적 약자들의 마음과 고통, 희망과 욕구와 소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을 건성으로 대했던 자신을 책하며 돌아보게 했다.

지금도 우리의 블루스는 진행형이다. 어디서나 서글프고 애처로운 블루스가 우리들 삶에 흐르고 있다. 20세기 초 흑인들의 슬픈 사연을 담아낸 미국 남부 음악에서 출발한 블루스의 역사처럼 우리의 삶에도 흐르고 있다. 영옥의 블루스가 이제는 우리들의 블루스가 되어 흐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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