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성이 역사와 문화관광의
중심이 되어
평택시가 문화도시로
발전하면 좋겠다

 

 
▲ 이광섭
평택시문화관광해설사

‘팽성역사문화특구조성시민연대’ 활동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필자도 이 고장 출신으로 팽성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팽성은 2000여 년의 역사의 뿌리를 가진 지역으로, 평택平澤이라는 지명이 본래 생겨난 평택현 즉, 지금의 팽성읍이다.

평택현平澤縣은 지리적 특성을 잘 나타낸 한자와 같이 평평한 평야와 하천 습지가 많은 곳이라 백제시대에는 하팔현河八縣이라 불렀다. 하팔현은 완만한 구릉과 안성천변의 너른 벌판이 펼쳐진 곳으로 온화한 기후에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다. 이러한 조건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어로 활동과 농사를 짓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자연환경으로, 이는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거주한 흔적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문헌에 의하면 평택현의 대표적인 선사시대 유물 발견지역은 팽성읍 석근리 유물산포지와 대추리유적지가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16년 757년에는 행정구역 이름을 한자로 개편하면서 하팔현을 평택현으로 바뀌며 처음으로 ‘평택’이라는 지명이 나타났다. 조선시대 충청도에 속했던 평택현은 전국 330여 군현 가운데 가장 작은 고을이었다. 고종33년 1896년에 행정구역이 13도 체제로 바뀌면서 진위군은 경기도에 평택군은 충청도에 편성되기도 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행정구역의 조정과 개편으로 진위군과 평택군이 진위군으로 통합됐으며, 오늘날과 거의 같은 평택의 면적과 모양을 갖게 된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미군기지 건설로 시작된 주한미군과 팽성의 인연은 역사의 그늘이자 새로운 기회로 한국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다. 팽성읍 남산리 미군 CPX훈련장안 소나무 숲속에는 일본군이 건설한 지하벙커가 있다. 

이 밖에도 팽성읍 평궁리는 국가무형문화재이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평택농악의 발상지다. 객사리는 옛 평택현의 본거지로 향교와 관아 터, 객사가 있다. 그 밖의 문화 유적지로 안정리에 농성, 본정리에 홍학사비각 등 다른 어느 고을보다 문화유적지가 많다.

이와 같이 팽성은 많은 문화유적지를 비롯해 미군기지와 인접한 안정리 등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와 문화유산 관광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팽성역사문화특구조성시민연대의 활동은 유구한 역사를 간직해온 팽성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알리고 전통을 이어가며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평택시도 팽성문화특구 조성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체계적인 인프라를 구축해 팽성의 문화유적지를 교육과 휴식공간으로 제공함은 물론 관광산업 발전 측면에서의 정책적인 수단으로도 활용해야 한다. 정장선 평택시장 당선자도 선거공약으로 부용산역사공원 조성과 팽성읍객사 주변 정비 사업, 예절원 설립과 한옥마을 조성 등을 공약한 바 있다. 하루빨리 평택의 뿌리 팽성이 역사와 문화관광의 중심이 되어 평택시가 문화도시로 발전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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