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야기는
지혜가 늘어나고 있다는
확실한 근거가 분명하다

 

   
▲ 권혁찬 전 회장
평택문인협회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추억들이 우리 주변엔 참 많다. 특히나 놀이가 전부였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더욱 그러하다. 연 날리기, 자치기, 숨바꼭질, 말뚝 박기, 팽이치기, 딱지치기, 썰매타기, 눈싸움, 쥐불놀이 등 수많은 놀이가 우리를 키웠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내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놀이들이다. 우리 모두가 좋아했던 것은 틀림없다. 겨울이 오면 썰매타기와 눈싸움을 주로 했다. 넓은 물이 없던 농촌에서 태어난 어린 시절 농사를 짓기 위해 겨울동안 논에 잡아 둔 물이 얼어 얼음판이 되기를 고대했다. 이윽고 물이 얼면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썰매를 어깨에 메고 얼음판으로 달려갔다. 모두들 신나게 썰매를 타고 놀다보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저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쯤에야 하나 둘씩 집으로 가곤 했다.

언 손을 호호 불며 종일 팽이치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아버지께서 내 손을 잡고 팽이치기를 너무 오래하면 한쪽 팔만 길게 늘어난다며 손수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왼팔과 오른팔의 길이가 다른 것을 보여주셨다. 나도 어려서 팽이치기를 많이 해서 이렇게 한쪽 팔이 길어졌다고 하시며 내게도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정말 나도 한쪽 팔이 길어지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앞서 긴 시간 팽이치기를 하지 않고 적당할 때 멈추는 요령을 알아차렸다. 아버지는 내게 참 잘 했다고 칭찬하셨다. 지금은 팽이치기를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어릴 적 두꺼운 달력 종이를 뜯어 딱지를 접곤 했다. 신문지 같은 얇은 종이로 접은 딱지보다 훨씬 힘이 좋아 다른 딱지들을 많이 따낼 수 있었다. 단연 으뜸 대왕딱지였기에 아직 지나가지도 않은 달력을 뜯어 모두 딱지를 접고는 한동안 꾸중을 듣기도 했었다.

요즘 아이들은 고무로 만든 여러 모양의 딱지를 이용해 논다. 얼마 전 손자가 내게 딱지치기를 제안했다. 두꺼운 달력 몇 장을 뜯어 들고 딱지를 접으려 하자 손자는 가방에 넣어온 여러 가지 모양의 딱지를 꺼내 놓았다. 서로 몇 개씩을 나누어 들고 딱지치기를 시작했다. 한참을 바닥에 내리치고 놀자니 어깨가 뻐근했다. 손자에게 그만하자고 말했더니 아쉬운 표정으로 조금만 더 놀자고 보챘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 오랫동안 딱지치기를 하면 한쪽 팔이 더 길어진다고 하며 적당히 그만할 것을 권했다. 물론 선의의 거짓이었다. 적당할 때 멈추는 지혜를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어른이 되고 지혜가 충만해지면 충분히 이 거짓의 지혜를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오랜만에 추억의 딱지치기 놀이를 통해 아버지의 교훈을 손자에게 일깨워주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이 영원할 것을 우리 모두는 철석같이 믿고 살아가고 있다. 팔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늘어나고 있다는 확실한 근거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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