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울/놀

 

▲ 김선옥 사서
평택시립 배다리도서관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명 ‘힙’하다고 알려진 아이템 중 하나가 반가사유상이다. 한국사 교과서에서만 봤던 그 반가사유상이 트렌드가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문화재는 시험을 위한 암기 대상인 줄 알았던 우리네들, 즉 ‘대중’의 관심을 어떻게 끌어올까 하는 것은 우리 전통 문화재가 가진 숙제일 것이다. 문화재는 촌스러운 게 아니라 세련된 것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이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 ‘나는 꽃을 좋아해요’ ‘나는 봄을 좋아해요’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물은 반가사유상이고, 가장 좋아하는 궁궐은 덕수궁이에요’라고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세상이 앞으로 올 것이다.

작가는 트렌디 한 시선으로 궁궐을 구석구석 탐닉하며 재미있는 요소를 찾아 책에서 소개한다. 궁궐 마당에 깔린 커다란 돌을 박석이라고 한다. 이 박석은 가죽신을 신은 신하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평평하지 않은 돌로 제작되었는데, 비가 와도 빗물이 고이지 않고 배수구로 흘러갈 정도로 과학적이다. 작가는 마치 박석이 깔려있는 모양새가 체스 판 같다고 표현한다. 박석 위로 왕과 문관, 무관이 서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면 그야말로 궁궐 앞마당 자체가 거대한 체스판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전통 건축물에 쓰이는 석재는 대부분 화강암이다. 화강암은 워낙 밀도가 높고 자칫 잘못 힘이 들어가면 쩍 갈라진다고 하니 결코 다루기 쉬운 돌은 아니다. 그러니 돌을 쪼는 일은 화강암을 닮은 성격의 사람이 아니라면 오래하기 힘든 일이다. 이러한 돌의 특성 때문에 사람이든 동물이든 웬만하면 몸통에 사지를 착 붙이고 있는 자세를 조각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석불들이 대개 둥그런 인상에 팔과 다리를 몸에 붙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한 권의 도슨트와도 같은 이 책을 읽다 보면 직접 가보지 않더라도 궁궐 한가운데 서 있게 된다. 평소에 관심 갖지 않았던 돌, 나무들, 인디고 블루색 기와 들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책을 덮을 때쯤엔 내 취향엔 어느 궁이 더 맞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를 문화재 덕후라고 자칭하는 작가답게 책의 후반부에는 ‘궁궐의 물건’을 주제로 조선 왕실의 물건이 소개된다. 궁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어봤으면 하는 마음에 살짝 뜬금없고 아쉽지만 역시나 작가의 재치 있는 시선과 설명이 유물을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특히 ‘봉황문인문보’의 보자기 문양이 인상적이었다. 이 문양은 케이 팝 아티스트들이 뮤직비디오와 공연에서 입어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왕실 특유의 개성이 느껴지는 파스텔 톤의 간색이 전혀 촌스럽지 않고 세련되며, 앞서 언급했듯이 ‘힙’하게 느껴진다.

‘태정태세문단세’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재밌는 궁궐 탐방을 끝내고 이제는 나를 박물관으로 데려갈, 작가의 또 다른 책 <뮤지엄 서울>을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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