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에게 더 좋은 근무 환경 제공할 것”

 

20년 학원 운영, 평택복지재단 근무
2019년 재가노인요양센터 설립·운영

 

 

“요양보호사분들에게 더 좋은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칠 남매 중 막내

평택시 현덕면 신왕리가 고향인 임계선(64세) 평택시지역사회복지센터장은 칠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먹고살기 급급한 시절에도 딸, 아들 차별 없이 교육을 시켰고, 그 결과 현재 80세가 넘은 그의 언니도 대학교를 나올 수 있었다.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전폭적인 지원을 쏟으셨습니다. 당시 현덕면 신왕리는 고등학교조차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을 정도로 굉장히 시골 동네였어요. 하지만 저희 언니, 오빠들은 아버지의 지원으로 대부분 대학교까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임계선 센터장은 대부분 서울 유학 생활을 했던 형제들과 달리 고향에서 초·중·고교를 모두 졸업했다.

“아버지는 막내딸인 저를 지극히 아끼셨습니다. 저만큼은 타지로 유학을 보내지 않고 곁에 두셨죠”

고교 졸업 후 서울 언니, 오빠 집에서 머물던 그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뒤늦게 전문대학에 진학해 유아교육학을 전공했다.

“당시 조카들이 많아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유치원 교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죠. 대학 졸업 후에는 서울에 있는 유치원에서 몇 년간 근무했습니다”

 

사회복지사가 되다

임계선 센터장은 1987년 서른 살에 남편과 결혼식을 올리고 다시 평택으로 내려왔다. 당시 공무원이었던 남편의 월급은 유치원 교사 시절 그의 수입과 비교해도 적었다.

“당시만 해도 공무원 월급이 많지 않았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습소를 운영하기 시작했죠”

얼마 뒤 바로 학원 인가를 받은 그는 20년이 넘도록 평택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1990년쯤 대한적십자사봉사회 한아름봉사회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학원 운영은 선생님들에게 맡기고 저는 대외 활동을 많이 했죠”

임계선 센터장은 이를 계기로 단국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학원은 쉰 살까지만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생을 주로 가르치는 입시학원이었는데, 늦은 시간까지 근무하는 것은 물론 일이 굉장히 고됐죠”

일찍이 학원 운영을 접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2008년 12월 평택복지재단 창립 멤버로 합류해 사회복지사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처음엔 봉사와 별다른 것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입사 원서를 냈습니다. 막상 직접 경험해보니 행정업무도 매우 많았고 힘들었죠. 젊은 선생님들을 쫓아다니며 정말 열심히 배웠습니다”

임계선 센터장은 늦은 나이에 시작한 만큼 더 열심히 노력했다. 밤 12시까지 일한 날도 부지기수였다.

“노력한 결과 가족지원실장직을 맡을 수 있었고, 정년퇴임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10년 정도 일했는데, 좀 더 빨리 사회복지사로 활동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들기도 했죠”

 

재가노인요양센터를 열다

임계선 센터장은 퇴임 후 휴식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그 결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6개월 정도 쉬니 마냥 쉬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취업하기에는 나이가 많아 힘들었죠. 이때 노인 사업의 경우 전망이 있고, 내가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2019년 4월 평택시 서정동에 재가노인요양센터인 ‘평택시지역사회복지센터’를 설립했다.

“처음엔 남편이 굉장히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돈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시작할 수 있었죠. 집에만 있으면 건강이 더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고,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평택시지역사회복지센터는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노인장기요양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상담하고, 보험에 가입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는 방문요양보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센터장으로서 사무업무로 보고 있지만, 어르신들도 많이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재가노인요양센터로 살아남기가 힘들지만, 저희 요양보호사님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센터를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임계선 센터장은 이타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아름봉사회장을 물론, 대한적십자사 평택지구협의회장까지 역임한 그는 이외에도 안전모니터봉사단을 만들어 20년 이상 재난안전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한다. 임계선 센터장의 활동이 평택시민의 행복에 작은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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