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은 
봉수대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라는 시민의 요구를
거절하면 안 된다

 

▲ 백승종 상임대표
괴태곶봉수대되찾기
시민운동본부

평택시 포승읍 괴태곶봉수대는 평택시향토유적 제1호이다. 1894년 갑오개혁이 시행되기 전에는 괴태곶에서도 날마다 봉화를 올려 변방이 무고한지를 조정에 알렸다. 

우리 평택의 봉수대는 좀 특별한 곳으로, 국가가 경영하는 목장 안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 목장도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으나, 목장도 관리하고 봉수대도 돌보던 부지런한 백성의 후예가 아직도 봉수대 주변에 살고 있다. 사십년 전까지도 그들은 어린 시절 봉수대를 놀이터로 삼았고, 인근 학교에서도 봄가을마다 봉수대로 소풍을 다녔다.

봉수대로 올라가던 길에는 전통사찰 수도사가 있다. 옛 기록에 따르면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득도한 곳이다. 알다시피 원효대사는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을 떠나려고 이곳에서 큰 배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옛 무덤가에서 잠을 청하던 중에 특이한 체험을 하였다. ‘해골 물’을 마신 사건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도를 깨쳤다고 한다. 그 사건을 기념해서 세운 사찰이 수도사이고, 이 절의 신도 중에는 목장과 봉수대의 주민이 상당수였다. 요컨대 괴태곶은 유서 깊은 옛 가람의 향기를 간직한 채 봉수대와 목장의 흔적이 남은 곳이다.

지난 초봄, 나는 괴태곶봉수대되찾기운동본부의 주역인 여러 시민과 함께 봉수대에 올라 거울처럼 빛나는 서해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봉수대에 올라 드넓은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면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직접 올라가 본 다음에야 그것이 무슨 말인지를, 나도 실감했다. 봉수대는 시민의 애환이 담긴 추억의 공간이자 큰 위안의 힘을 가진 특별한 곳이다.

그런데 1990년대 해군 제2함대가 이곳에 들어오면서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부대 이전 직전만 해도 주민에게 봉수대를 상시 개방하겠다는 약속이 있었으나, 철책선이 겹겹으로 쳐졌고 약속은 실종됐다. 해군은 봉수대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라는 시민의 요구를 거절하면 안 된다. 봉수대는 본래 국방문화유산이고, 특히, 수군의 작전 활동과 직결된 문화유산이다. 수군의 후예로서 해군은 시민과 함께 봉수대를 지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참에 봉수대를 복원하고, 국내 최초의 봉수대박물관도 함께 건립하면 얼마나 좋을까. 해마다 서너 번은 해군 장병이 봉화도 직접 올려보고, 근무 교대식도 진행하면 어떨까 싶다. 시민과 해군이 어울려 즐거운 축제의 시간을 보낸다면 국방의 전통을 잇는 역사교육의 현장이 될 것이다.

평택시향토유적 제1호인 괴태곶봉수대는 자랑스러운 평택시 문화재로서, 제대로 복원해 후세에 물려줄 훌륭한 전통유산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2015년까지 연초에 봉수대에서 해맞이 행사를 했으나, 이제 그마저 중단된 지 오래다. 일부 시민들은 “이럴 바에야 해군 제2함대를 이전시키고 봉수대를 시민이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시민은 국토방위를 위해서 삶의 터전까지 기꺼이 내주었는데, 도리어 재산권은 제약되고 사격장 소음으로 피해를 보는 실정이다. 애초 약속했던 봉수대 상시 개방까지도 실종됐으니, 시민의 원성이 큰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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