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쑥고개_15

 

쑥고개의 이방인들

 

 

▲ 정문 통 오후의 스냅(1980년대 말)

 

 

   
▲ 이수연
한국사진작가협회
전 부이사장

■ 초대받은 손님

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흑인 인권 운동을 전개하던 시절에서 알 수 있듯 미국에 아직 흑백 인종 갈등이 심하던 1967년의 작품으로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주연을 맡았다. 

사회 저명인사로 평소에 흑백 차별에 반대한다던 아버지를 믿고, 사별하여 홀로 되었을 뿐 아니라 아이까지 딸린 흑인 남자와 결혼하겠다며 그를 집에 데려온 백인 처녀 사이의 드라마다. 결말은 해피앤딩의 ‘초대받은 손님’이지만 이는 영화나 소설 속의 계몽적 이야기라고 치부했다. 이런 영화가 등장한다는 게 아직 그런 소재가 낯설기에 상업화의 기능성이 있다는 뜻이며 쑥고개에서 보듯 흑백 차별은 당시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 연 ‘기억과 추억 사이 : 쑥고개’ 사진 전시를 준비하며 정리한 필름에서 영화의 결말 같은 장면을 발견했다. 흑인 남편과 백인 아내 그리고 흑인 아이의 쑥고개 외출 장면이다. 가족 단위 외출 장면을 가끔 볼 수 있었지만 이런 관계는 처음 찍었다. 

요즘 외출 나온 이들을 보면 내 필름 속 인물들과 달리 인종이 다양하다. 아마도 미국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한 후에 시민권 취득에 혜택을 받는 등의 이유로 많은 나라의 이민자들이 군대에 입대하면서 파병 나오는 게 이유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종 구성이 다양한 것을 증명하는 사례가 있다. 음식점이다. 우리도 며칠짜리 해외여행을 가면 한국 음식을 찾는데, 미국으로 이민 가서 다시 낯선 나라 한국까지 파병 나온 이들이야 오죽하랴. 

이곳 미군기지 정문 일대 반경 150미터도 안 되는 지역을 직접 발품 팔아 세어 본 종류만 16개국 음식점이다. 햄버거와 피자처럼 이게 미국이나 이탈리아 전통음식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그저 맛있게 먹는 우리의 일상적 음식쯤으로 생각하는 걸 비롯해서 케밥, 스파게티, 쌀국수, 브라질 스테이크나 팟타이, 영국의 펍pub까지 다양하다. 열거하자면 미국,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 필리핀, 브라질, 터키, 페루, 프랑스식 아프리카, 인도, 이탈리아, 영국, 멕시코, 그리고 우리나라다. 파키스탄 음식점은 그사이에 안 보이나 이 밖에도 어쩌면 미처 보지 못한 곳에 자리 잡은 특별한 나라 음식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추측해보건대 이리도 다양한 나라의 음식점이 있는 이유는 첫째, 유행을 타는 음식의 흐름이 쑥고개도 비켜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거고, 둘째는 앞선 이유로 다양한 출신의 미군을 위한 공급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며, 셋째는 우리나라에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 그들의 사회 참여가 왕성해진 것이라는 생각 등이다. 

▲ 1987년 한미 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 참가차 방한한 미군의 외출.
▲ 사진 위. 부대 정문 앞 미군의 외출 풍경(인터넷 캡처, 1959년). 뒷모습만 보아도 멋진 군인 태가 난다. 사진 아래. 그들의 외출은 언제부터인가 사복으로 바뀌어 군사훈련 중에도 외출 때면 사복을 입는 그들은 오히려 군복 차림일 때가 더 낯설기만 하다(1980년대 말).
▲ 부대 정문 앞 다국적 식당 간판 모음
▲ 부대 정문앞과 엘간 골목 풍경

 

■ 누가 이방인일까?

최근에 미국 관련 다큐 방송을 보다가 문득 이상한 표현을 들었다. 그동안 익숙했던 ‘원주민’ 대신 ‘선주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 지역에 본디부터 살고 있던 사람이라는 ‘원주민’을 밀어내고 ‘먼저 와서 사는 사람들’로 의미를 바꾼 것처럼 들렸다. 인디언이, 침략당한 피해자가 아니라 그저 앞서서 그 땅에 일찍 들어간 사람이고 그들이 그렇게 들어간 것처럼, 백인들도 들어가다 보니 다툼이 생겼다는 정도로 생각이 비약하고 침략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발언 같아 몹시 낯설었다.

이 글을 쓰면서가 그랬다. 그동안 그런 생각 없이 살아왔건만 다시 돌아보게 한다. 쑥고개에서는 미군이 기지 건설을 먼저하고 자리 잡았으니 그들이 선주민인가? 그렇다면 그들을 따라 쑥고개로 온 우리는 이방인인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또는 언어나 풍속, 사고방식 따위가 아주 다른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하는데 영어가 일상화되고 군대 문화가 익숙한 쑥고개에서의 이방인은 누굴까? 

시간을 30~40년 전쯤으로 되돌려 보면 내 필름 속 인물들에 대한 촬영 의도가 분명해진다. 이제는 우리도 일상적으로 그러려니 하는 모습들인데 그때는 아주 낯설게 보았던 모양이다. 남자가 애를 업거나 덩치 큰 남자가 아주 작은 개를 데리고 거리를 산책하는 모습, 기저귀가 널린 달동네 골목길을 걷거나 우리네 주택가를 배경으로 어딘가 가는 미국인은 퍽 낯설었다. 

분명 국내용일 텐데 구멍가게에서 공중전화로 통화하는 미국인의 상대는 누구일까? 한글과 영어로 된 삼겹살 식당 앞에 앉은 히스패닉계 사람은 더욱 그렇고 쇼핑 도중 시장통 어느 가게 앞 바닥에 모여 앉은 모습, 염색하지 않은 자연 금발이나 레게머리도 마찬가지다. 그저 여기서나 볼 수 있던 모습이고 낯설기만 하던 풍경이었다.

더욱 낯선 건 토요일 오후에 좁은 인도를 메운 채 외출하는 사복 차림의 그들이고 어쩌다 군복 차림은 더욱 그렇다. 

가족 나들이도 그렇다. 처음에는 군무원이나 계약직으로 파견 나온 민간 기술자들이려니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곳에서 오래 장사해온 어떤 이의 말로는, 미군이 필리핀으로 파견 가면 본국의 부인과 이혼하고 현지 여성과 결혼한다고 했다. 그가 한국으로 오면 다시 필리핀 여성과 이혼하고, 일본으로 가면 일본 여성과 결혼한다고 했다. 동양권 여성을 약간 풍자적으로 비유한 것이겠지만 요즘 이러면 여성 비하 발언이라고 큰일 날지 몰라도 당시 그렇게 들었다. 부대 안에 유치원에서 대학교 분교까지 설립하고 가족 동반 해외 파견을 권장하는 미국의 정책 도입 배경에 그런 사유가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들과 함께 섞여 살고, 이방인의 의미나 구별이 필요치 않은 공간과 시간에 사는 것이 쑥고개의 일상이다. 국제중앙시장, 국제신도시라는 단어에서 보듯 평택이 내세우는 ‘국제’의 바탕이 된 쑥고개 이방인에 대해 짧은 생각을 풀어보았다. 

 

▲ 쑥고개의 이방인 : 낯선 풍경들(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 미군의 가족 동반 현지 부임으로 정책이 바뀐 후의 정문 앞 다양한 군상群像들. 왼쪽 사진 첫 번째 컷의 흑백 커플이나 그 오른쪽 덩치 큰 남성이 등에 업은 아이 사진이 당시에는 아주 이색적이었다(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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