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보이기 위한 겉치레는 싫어요

 

일본에서 귀화한 알뜰 살림꾼, 가와카키 미도리

 
올해 한국생활 12년째에 접어드는 귀화여성 가와카키 미도리(여·37·평택시 동삭동 현대아파트) 씨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고국 일본과 거의 대등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느끼면서도 국민 개개인이 소비하는 행태는 양국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사람은 작은 차를 좋아하는데 한국사람은 큰 차를 좋아하더군요. 일본사람은 외식도 잘 안 해요. 주말이 되면 한국사람은 외식하는 것 너무 좋아하더군요. 한국은 전화로 배달시켜 먹는 것도 좋아하고…,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알뜰하게 살림을 사는 편이에요”
미도리 씨는 한국사람들이 자기 분수에 맞게 살기 보다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외형적인 것에 너무 치우치는 것 같다며 최근 신용불량자가 많아지면서 국가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원인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사람이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으로 판단할 수 없죠. 어쩌면 빚으로 살아가는지도 모르잖아요”
한국사람들의 과소비 행태를 꼬집는 미도리 씨, 그녀는 여전히 알뜰한 일본사람이었다. 기자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도 그녀는 매우 단순한 검정색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사진을 찍기에는 매우 실망스런 복장이었다. 점퍼를 벗기로 했지만 역시 단순한 T셔츠 차림이었다. 결코 멋을 내지 않은 순진한 소녀 같은 모습이 오히려 좋았다.
미도리 씨는 2001년 한국으로 시집와서 지금까지 평택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재래시장에서 장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저는 대형마트보다 재래시장에 가서 장보는 것 좋아하거든요. 시장 아주머니들은 1000원 어치도 잘 주시잖아요. 덤으로 더 주시기도 하고 음식 만드는 법도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 주셔서 제가 많이 배우기도 해요. 재래시장은 한국문화고, 롯데마트나 이마트는 일본문화예요”
자주 한국을 방문하는 친정 어머니도 재래시장을 즐겨 찾는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 학원강사로 활동하면서 두 아이를 기르고 있다. 매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평택의 한 외국어 학원에서 일어회화를 가르치는데 한국어도 능통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녀가 직접 가르쳐본 경험에 따르면 한국사람은 일어를 쉽게 배우는 편인데 일본사람은 한국어를 배우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한국어는 발음이 어려워요. 일어는 발음이 단순하잖아요. 이에 비해 한국어는 받침도 있어서 들리는 대로 적을 수가 없어요. 한국사람은 세계 어느 나라 말도 발음할 수 있고 따라 적을 수도 있죠” 학원 수강생은 주로 직장인들이고, 일부는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도 있다고 했다.
그녀의 대학시절 전공은 사회복지학, 결혼하기 전 일본에서 사회복지사로 활동했다. “3년간 병원에서 근무했어요. 일본에서는 복지시설을 가장 많이 운영하는 곳이 병원이거든요. 장애인이나 노인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국가로부터 복지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일했어요. 사회복지 서비스는 일본이 가장 잘 돼 있어요. 장애인들의 경우에는 의료비가 전액 무료로 지원되죠”
한국도 그 동안 많이 발전했지만 일본에 비해서는 아직 사회복지시설이 절대 부족한 편이라고 그녀는 진단했다. 
그녀의 고향은 오카야마, 일본 남부지방의 소도시다. 평택과 비슷한 규모로 지진도 없고 평온한 곳으로 바다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여자는 아이 낳고 사는 곳이 고향이 되는 것 같아요”
이제 완전히 평택사람이 돼 향수병조차도 모르고 지낸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일간 스포츠 경기가 열릴 때는 가족들끼리 서먹해진다고.
“월드컵 한·일전 경기 때 남편은 한국을 응원하는데 아이들은 제 눈치를 보더군요. 저랑 신랑은 국경이 있지만 2세들은 국경이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아이들이 엄마의 나라도 인정하는 거죠”
올봄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는 큰 아이가 역사를 배우면서 일본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고 있다며 그녀도 고국의 과오를 인정했다.
“저도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 땅이라고 알고 있어요. 아이들이 엄마 나라에 관심을 갖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일본에 대해 가르치겠습니다”
미도리 씨는 지금 홀몸이 된 시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사는 보기 드문 효부다. 시어머니는 6년 전 돌아가셨다. 그녀는 암과 투병하는 시어머니를 2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간병했다. 그때 둘째 아기를 낳은 후여서 너무 힘들었다고 회고하는 미도리 씨는 대신 시아버지로부터 진정한 자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요즘 시아버지께서 저한테 너무 잘 해주셔요”
김장을 비롯해 무슨 음식이든 가족들 입맛에 척척 맞게 요리해내는 그녀는 진정한 한국 아줌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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