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좋은 글을 읽노라니
세파에 부대끼느라 잊고 지내던
벗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 백승종
역사학자

천하의 수재라서 그랬을까. 허균은 살면서 늘 외로워했다. 그가 쓴 ‘사우재기四友齋記’란 글을 읽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허균은 자신의 거처를 사우재라 했는데, 그 자신과 세 명의 벗이 함께하는 공간이란 뜻이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중국의 이름난 명사들이었다. 중국 진晋나라 시절의 시인 도원량, 당나라 시인 이태백, 그리고 송나라의 문장가 소자첨이었다.

허균이 선택한 세 벗은 모두 비범하였다. 그들은 한가하고 고요한 자연을 사랑하며 우주를 집 삼아 인간 세상을 우습게 여긴 탈속한 현자들이었다. 또 하나같이 고금에 이름난 문장가들이었다.

허균은 당대의 화가 이정에게 부탁하여 세 벗의 초상을 그리게 하였다. 아울러 그림마다 추모의 글을 지어 명필 한석봉에게 글씨를 부탁하였다. 안타깝게도 이 그림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물론 허균의 생전에는 달랐다. 그는 여행 중에도 그림을 휴대하여 머무는 곳 어디나 방 한쪽에 걸어두었다. 덕분에 그가 머무는 곳은 항상 네 사람의 선비가 웃고 담소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허균은 “어디에 있든 이 그림만 있으면 내 처지가 외롭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라고 하였다. 그로서는 세속의 친구를 사귈 필요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 허균에게는 정말로 친구가 없었을까. 세 군자의 초상을 그려준 화가 이정이야말로 그가 아끼는 벗이 아니었던가. 화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허균은 몹시 슬퍼하였다. 애사哀辭를 지어 이정의 풍모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술을 즐겼고 마음이 활달하였다. 글씨도 잘 쓰고 시도 잘 알았다. 무슨 일을 하든지 속기俗氣가 없고 비범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생활이 곤궁하여 남에게 의탁하고 살았으나, 의義가 아니면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아무리 권력이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더럽게 여겼다” “아름다운 산수山水를 발견하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구경하느라 돌아갈 줄 몰랐다”

허균은 나이고 벼슬이고 따지지 않고 이정을 깊이 사랑했노라고 고백하였다. 알고 보면 그들은 두터운 우정을 키우며 산 것이리라. 물론, 허균에게는 여러 명의 심우心友가 있었다. 조지세는 그중 하나였는데,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에는 그들의 우정을 말해주는 글이 많다.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어 얼마나 좋아했던지 마음에 거슬림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서로를 찾았고, 잠시도 헤어지지 못했다. 날마다 풍아 風雅를 비평하고 고금의 문장가를 존숭하며 세월을 보냈다. 세상 풍파와 무관하게 이렇게 지낸 것이 여러 해였다”

그런데 허균에게는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벗만이 벗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시공을 초월하여 뜻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라야 진정한 벗이었다. 화가 이정이 그린 3인의 옛사람을 마음속 깊이 흠모하여 어느 곳에 가든 그들의 초상화를 펼쳐놓고 대화를 나누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문장가의 우정이 아니던가. 이 글을 쓰면서 문장가도 아닌 나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그럼 나에게 우정은 과연 무엇인가. 나의 친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가. 그는 아직도 나를 생각할까. 허균의 좋은 글을 읽노라니 세파에 부대끼느라 잊고 지내던 벗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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