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음악단체 선진 사례 만들어갈 것”

 

경기민요 이수, 평택민요 직접 찾아나서
2017년 평택민요 장례요 보유자 지정

 

   
 

 

“평택민요보존회가 전국 민속음악단체의 선진 사례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경기민요를 배우다

어영애(65세) 평택민요보존회 단장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평택시 현덕면 기산리, 과거 어업과 농업 활동이 발달했던 농촌마을이다.

종종 어머니와 함께 굴을 따와 칼국수를 만들어 먹곤 했다는 그의 어린 시절 추억 속에는 평택호방조제가 들어서기 전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 풍부한 어족자원을 자랑한 바닷가 마을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두레박으로 쓰던 깡통을 들고 나가 칠게나 참게를 잡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갯벌과 포구는 주민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이었죠”

어영애 단장은 일찍이 국악에 심취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팝송이 유행할 당시 그는 국악 테이프를 구해 이를 반복해서 듣곤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국악을 배울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었던 그는 고교 졸업 후 상경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서울에서 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무역회사에서 7년간 근무한 뒤 평택경찰서에서 근무하던 남편과 결혼하면서 다시 평택으로 내려왔죠”

결혼 후 가정주부로서 육아와 살림에 전념한 어영애 단장은 우연한 기회에 경기민요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서울 남부터미널 인근 한 문화센터로 고려수지침을 배우러 다녔습니다. 한데 바로 옆 교실에서 경기민요 강좌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이때부터 경기민요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수자가 되다

비록 늦은 나이였지만, 두각을 보인 어영애 단장은 당시 경기민요 강좌를 운영하던 선생님의 제안으로 국립국악원에서 더욱 전문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국립국악원에서 1년 정도 배운 뒤 선생님의 추천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묵계월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경기민요 전수자가 되었죠”

당시 묵계월 보유자의 밑으로는 열댓 명의 제자가 경기민요를 전수했다. 그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았던 어영애 단장은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열심히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일주일에 한 번 묵계월 선생님에게 배웠는데, 저는 한 시간씩 일찍 나가 선생님과 독대를 했습니다. 연습이 없는 날에는 온종일 녹음테이프를 틀어 놓고 듣기를 반복했죠”

4년 가까이 묵계월 보유자 밑에서 경기민요를 전수한 그는 시험을 치르고 당당히 경기민요 이수자가 됐다.

이수자가 된 후에는 평택에 학원을 열고 경기민요를 전파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제자를 양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전수자 시절부터 시작한 국악협회 평택시지부 활동에도 더욱 열심히 참여했죠. 두 차례에 걸쳐 지부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평택민요보존회

어영애 단장은 우연히 시청한 TV 프로그램을 계기로 평택의 민요를 찾아 나섰다.

그는 평택 곳곳의 마을을 찾아다니며 지역 고유의 민속음악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평택 서부는 민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과거 농업과 어업이 동시에 발달한 지역이었다.

“제 고향 현덕면과 포승읍, 청북읍, 고덕면, 팽성읍 등에 위치한 여러 농촌마을에 찾아가 어르신들을 만났습니다. 나중에는 노하우가 생겨 겨울철 등 어르신들이 주로 마을회관에 모이는 시기에 주전부리를 싸 들고 다녔죠”

제자들과 2~3년에 걸쳐 평택의 각 마을을 다닌 끝에 두레소리를 보유한 이민조 선생 등 노동요, 장례요 보유자를 찾은 어영애 단장은 2007년 이들을 모아 평택민요보존회의 전신인 두레소리보존회를 만들었다.

“경기도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하기로 결심하고 어르신 80여 분을 모아 두 달 동안 연습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예산이 없어 주변에 후원을 요청해 간식을 마련했죠. 7~8월 뙤약볕에 연습하면서 어르신들에게 식사 한번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지금도 가슴 한쪽에 남아있습니다”

다행히도 평택민요보존회는 힘들게 출전한 ‘제16회 경기도민속예술축제’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평택민요는 2009년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17년 평택민요 장례요 보유자로 지정된 어영애 단장은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전승 활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평택민요의 맥을 잇기 위해서는 상설공연이나 정기공연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전승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승자들의 경우 동시에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단단한 지원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어영애 단장의 바람처럼 평택민요가 오래도록 전승·보전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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