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신시가지_09

 

아카시아밭 한증막

 

▲ ‘실제 하지 않는 풍경’ 2020년. 아침 산책길에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나무들이다. 어느 날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찍을 소재는 못 되어 10여 장의 파일을 합성하고 바닥과 배경 그리고 안개를 만들어 넣었다. 작품 의도는 Rhapsody of Sorrow이다.

 

 

   
▲ 이수연
한국사진작가협회
전 부이사장

■ 아카시아꽃 튀김을 아시나요

요즘은 식용 꽃이 있어서 비빔밥에 넣는다든지 한다. 나는 5월 중순께면 별미로 아카시아꽃을 튀겨 먹는다. 오래전에 ‘눈으로 먹는 절 음식’이라는 책에서 배웠다. 

아카시아꽃 튀김은 녹말가루와 밀가루를 일대 일 비율로 섞은 튀김 반죽을 쓰며 너무 노래지지 않도록 튀겨낸다. 나는 원전에 나오는 재료의 비율을 맞추지 않고 그냥 튀김가루를 쓴다. 꽃은 숲 안쪽에 피어 오염되지 않았을 것을 따되 봉오리가 완전히 벌어진 것보다 절반 정도 입을 벌린 것을 따, 쟁반에 얇게 깐 튀김옷에 꽃송이를 슬쩍 묻혀 낸다. 바삭한 식감과 첫입에 넘어오는 꽃 향이 일품이다. 책에는 조리법이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그저 경험상 터득한 것이다. 

내 아파트 뒷산은 5월 중순께부터 아카시아 꽃이 지천이다. 수십 년 된 나무에 핀 하양 꽃은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아파트 후문을 나서서 산책로로 들어서면 오른쪽은 그 옛날 파라다이스유원지였고, 왼쪽은 아카시아밭이라 부르던 곳이다. 

신혼살림을 처음 시작한 곳도 아카시아밭이다. 그 숲 한가운데에 한증막이 있었다. 주택으로 바뀐 지 오래지만, 번지로 위치를 갈음하는 것보다 그냥 ‘아카시아밭 한증막’이라고 하면 택시 기사가 데려다주던 곳이다. 그 집에서 살면서 친구들에게 찾아오는 방법을 알려주면 간첩 접선하는 것 같다면 낄낄댔다. 

송탄시 시절 그 아카시아밭에서 단오놀이 같은 군중 행사를 열었다. 숲 한가운데에 제법 넓은 공터가 있었고, 전봇대보다 곧고 높직한 기둥을 세워 그네 시합을 열고 모래로 씨름판을 만들었다. 대회의 흥을 돋우는 일은 풍물패가 맡았으며, 동별로 천막 치고 응원 겸 간이식당은 부녀회가 맡았다. 

쑥고개가 시로 승격되어서 송탄시가 되었지만 아직은 모든 게 궁핍해서 특별히 야외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봄에 아카시아 꽃이 유명하다면 가을엔 도토리다. 두 수종 모두 수십 년 이상 된 나무들이지만 도토리 열매를 맺는 참나무는 참혹한 모습으로 서 있다. 굵건 가늘 건 나무마다 사람 키 높이 부근에 괴사한 상처가 흉측한 종양처럼 나무 기둥을 두르고 있다. 우리 보릿고개의 현장 증언이기도 하다. 

지금은 9월 초부터 많은 사람이 허리를 구부린 채 그 숲을 뒤지고 있다. 남보다 일찍 도토리를 주우려는 거다. 옛날에는 도토리를 줍지 않고 땄다. 그것도 떡메나 커다란 돌덩이 같은 둔기로 나무를 힘껏 쳐서 말이다. 

상처 입은 나무는 스스로 살 방법을 찾았다. 둔기로 찍힌 상태로 상처 입은 만큼 옆으로 몸집을 불렸다. 두드려맞은 반대쪽은 그나마 낫다. 그냥 나무 기둥 중간이 굵고 넓적하게 보일 뿐이어서. 하지만 앞쪽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 모습에 놀라고 그 이유에 더 놀란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이 그랬다. 도토리를 가루 내어 만든 묵이 꽤 소중했던 그 시절이 빚어내던 슬프고 아픈 기억이다. 

▲ 지금도 5월이면 이곳에 지천으로 하양 아카시아꽃이 만발한다(2021년).
▲ 아카시아밭에서 열린 단오놀이(1994년). 송탄문화원 주최로 연 이 행사는 변변한 실외 공간이 없던 당시의 시대를 잘 말해 준다. 그네 높이뛰기 시합은 발판에 매단 줄이 얼마나 멀리 끌려 나가는가로 결정한다.
▲ 1980년대 후반만 해도 현 경기평택교육도서관 부근에 이런 시설이 체육공원에 있었다. 지금은 운동 나온 시민들이 비 오는 날에 발이 젖지 말라고 섬유 깔판을 길게 깔아주고 청소와 시설의 노후까지 관리하는 수준이 되었다.

 

 

■ 슬픔의 광시곡

자주 나가는 산책길에서 매번 보는 그 참나무를 소재로 사진 작품을 구상하다가 내게 맞지 않아 다른 이에게 힌트 주려고 톡 사진 보냈는데 돌아온 반응이 시큰둥하다. 

그래서 추천한 까닭을 보여주려고 10여 장을 합성해 발표했다. 적당한 나무를 찾아 찍고 나무만 오려서 배치했다. 안개도 만들어 넣어 사실 같은 장면을 만들었는데 자칫 실제 장면으로 오해받을 우려가 있어서 우리말 제목은 ‘존재하지 않는 풍경’이라 했고, 영어로는 Rhapsody of Sorrow라고 붙였다. 2020년 쑥고개에서 연 바깥 사진전에 걸었는데 지인이 달래서 그러라 했더니 전시 중에 떼어갔다. ‘으이 웬수… ’ ㅋㅋ

후문 초입은 공동묘지였던 듯 아직도 드문드문 묘가 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며 도서관이며 주택과 상가가 혼재된 인구 밀집 지역이 그곳을 빙 둘러싼 체육공원이 되었다. 아카시아밭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시절만 해도 아직 변두리였던 그곳에서 보던 사물이며 풍경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평택이 잘살게 된 것인지 우리나라가 부강해진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지금의 공원은 왠지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왕이면 체육공원으로 그치지 말고 숲속 넓은 공터에서 작은 음악회라도 한 번 열었으면 어떨지 싶다.

▲ 아카시아밭 단오놀이(1994년)
▲ 아카시아밭은 소음 발생이라는 이유 등으로 마땅한 연습 장소를 찾기 어렵던 사물놀이패들이 가끔 찾아와 연습하던 곳이기도 하다(1990년대 초).
▲ 엄마 손잡고 따라온 단오놀이 터의 흥미로움도 잠시, 특별히 즐기거나 쉴 곳 없는 아이는 어느새 자기만의 놀이를 찾았다.하지만 이도 지루했다. 아이는 다시 엄마의 놀이가 언제 끝날지 하품하며 기다릴 듯하다(1994년).

 

▲ 아카시아밭이자 파라다이스이며 체육공원이던 곳의 1980년대 후반 풍경. 현재 경기평택교육도서관인 경기도립도서관과 재건축으로 사라진 미군 전용 연립 아파트가 보인다.
▲ 아카시아밭 숲속에 만든 벤치. 나름 시민을 배려한다고 만든 시설이다. 시멘트 만능에 시멘트로 만든 벤치다(1980년대 후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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