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값진 마음의 선물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살면서 느끼는 이 나라의 이상한 풍습 가운데 하나가 무슨 날이 되면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거나 직장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이 없거나 사무실에서 직책이 낮아 봉급을 적게 받는 사람들이 없는 돈을 추렴해서 윗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선물이란 서로 주고받는 것이고 마음을 담아 능력에 맞추어서 하는 것이지 분수에 맞지 않는 선물이란 ‘뇌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우리 동네에 읍내에 살던 사람이 이사를 왔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있다가 웬 낯선 사람이 마당으로 들어섭니다.
-요 앞 골목 모퉁이 파란 대문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예요. 
하면서 팥 시루떡을 한 접시 가지고 왔습니다. 팥 시루떡을 가지고 온 것은 두 가지 이유입니다. 먼저 하나는 새로 이사를 왔으니 잡신과 역귀들은 집안 모든 대소사에 훼방을 놓지 말고 훠이 훠이 물러가라 하는 뜻과 또 하나는 이 떡을 먹고 공연히 트집을 잡지 말고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자라는 뜻이 담겨져 있을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선물의 ‘선’은 한자로 반찬 ‘선膳’ 자를 써서 선물입니다. 그러니까 ‘먹고 죽은 귀신은 태깔도 좋고’ ‘먹은 놈이 힘쓴다’고 일단 먹을 것을 함께 나누면 금세 서로가 가까워지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우면 천석꾼 집에서는 곡간을 풀어 굶주린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습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인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이었던 것이고 그야말로 진짜 ‘선물’을 나누어 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 명렬이 어머니가 오셨대요.
-그래?  지금 어디 계시냐?
-교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신데요.
몸집은 작지만 눈이 유난히 크고 말소리가 빠르고 영특한 명렬이는 늘 예의 바르고 품행이 단정했습니다. 그러니 특별하게 부모님께서 학교에 오셔야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큰아들이 중학생이 되었기에 담임선생에게 인사를 왔다는 명렬이 어머니와는 잠시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선생님. 저… 이 거… …
명렬이 동생을 업고 오신 명렬이 어머니는 16절지 시험지로 싸서 노랑고무줄을 두른 작은 물건을 책상위에 놓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교무실 밖으로 나가서 명렬이 어머니를 배웅을 하고 다시 교무실로 돌아와서는 명렬이 어머니가 놓고 간 물건을 풀어보았습니다. 누런 갱지로 싼 포장 안에는 ‘청자’ 담배 한 갑이 들어 있었습니다.
선물이라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보기만 하면 속에서 울화가 치미는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설 명절이나 추석명절이 되면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귀하고 소중한 물건인양 들고 가는 ‘참치깡통 선물세트’입니다. 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시간외 근무수당도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하는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도 어디에 가서 하소연 할 줄 도 모르는 선량한 직공들에게 명색이 명절이 다가왔다고 큰 선심이라도 쓰는 양 ‘참치깡통’ 선물세트를 한 상자씩 안겨주고는 회전의자에 앉은 회사 임직원들은 연휴를 이용해서 해외로 골프여행을 떠나는 불공정한 사회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점심시간이 아직 채 끝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교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박삼종이가 배가 아프대요.
아이들과 교실에 가보니 책상에 엎드려 있던 삼종이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얘. 삼종아! 너 점심 먹은 게 체한 모양이구나. 안되겠다. 이러고 있지 말고 집으로 가라. 이리와!
-싫어요. 안 가도 되요 괜찮아요.
그래서 우선은 좀 더 기다려봐야겠다 싶어서는 학교 앞 구멍가게로 나가서 활명수를 한 병 사다가 삼종이에게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5교시 수업을 하고 교실에 가보니 여전히 삼종이는 책상에 엎드려 있습니다. 그래서 조퇴증을 써서 주고는 활명수를 한 병을 더 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수업이 끝나서 분수대 앞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분수대 앞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선생님 삼종이 할머니 오셨어요.
아이들이 먼저 떠들어댑니다.
-고마워요 선상님. 우리 삼종이를 챙겨주셔서유~
그래서… …
삼종이 할머니는 아이들이 다 쳐다보는 앞인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는 속곳에 달린 작은 주머니에서 500원짜리 한 장을 꺼내더니
-선상님 날도 더운데 냉면이라도 사서 드셔유. 고마워유~
아이들은 우! 우! 우! 우! 소리를 지르면서 아우성입니다.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해마다 6월 6일 현충일을 낀 사흘동안 농번기 휴가에 반 전체가 신민철君집에 모심기를 갔습니다.
얼마 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오니 민철君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선상님 이런 거 좋아하실랑가 몰르겄네.
집에서 놔 멕여서 키운 것이라 찹쌀 넣고 푹 고아 드시면 몸보신도 되고 말이유…
민철이 어머니는 보자기에 쌓인 채 눈만 껌뻑거리고 있는 암탉을 들어 올렸습니다.
-꼬꼬댁 꼬꼬 꼬꼬댁 꼬꼬…
-하 하 하 하…
교무실 안이 다 뒤집어졌습니다.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