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자체 규정, 주권 침해요소 많은 ‘오프리미트’

1992년 체결된 ‘기지 외 업소를 위한 규범 안내서’ 근거로 시작
인권침해·불평등 협정, 평택시 2005년 무효 선언에도 묵묵부답
2009년 이후 43개 업소 적용, 미군끼리 싸워도 책임은 업주가

 
 
지난 6월 14일, 한국외국인관광시설협회 송탄지부는 오프리미트 철폐를 요구하며 ‘미군부대 불법수사·인권유린 규탄 및 생존권 사수’를 위한 집회를 시작했다.
이번 집회의 원인은 K-55 미 공군 측에서 6월 13일 평택시 신장동 ‘신장쇼핑몰’ 내 관광업소 7곳에 대해 미군 장병의 업소 출입을 금지하는 오프리미트(off limit)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미군부대 주변 50개 외국인 전용클럽 중 최근 오프리미트 처분을 받은 8개 업소를 포함해 모두 15개 업소가 사실상 영업금지 조치를 당하자 한국외국인관광시설협회 송탄지부 회원과 외국인 종사자 등 150여명은 “더 이상 기지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참을 수 없다”며 “지역경제를 말살하는 기지 측의 월권행위와 지역주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정책은 하루빨리 시정돼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내걸고 시위에 나섰다.
미군 측은 업소에 보낸 공문을 통해 ▲인신매매 지표가 나타난다 ▲성적 호의를 제공하고 있다 ▲야한 춤을 추고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군기조정위원회에 참석할 것을 통보해왔다.
그러나 클럽 업주들은 “군기위원회가 미군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받아들여 ▲업주가 미군병사의 성매매 제안에 응하지 않을 경우 다른 업소로 전출시켜버린다 ▲미군병사가 종업원에게 주스를 사주면 종사원측에서 성적 대가를 받을 수 있다 ▲종업원의 단체복장 착용 및 머리염색이 유엔 헌장의 인신매매 조항에 위배된다는 등 터무니없는 사실로 출석 요구와 영업장 폐쇄조치를 내리고 있다”고 반발하면서부터 문제가 확대됐다.
시위가 장기화되자 6월 24일에는 외국인전용클럽이 아닌 일반 상가 상인들이 오랫동안의 출입금지 조치로 영업에 심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며 시위대와 논쟁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 민·민 갈등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미군 우월 인정한 불평등 협약
인권침해 소지 다분한 조항 많아
“지자체 협약권 없어 규범 무효”

상인들과 미군 간 갈등 원인이 되고 있는 오프리미트는 1992년 4월 당시 권호장 송탄시장과 K-55 기지사령관 사이에 체결한 ‘기지 외 업소를 위한 규범 안내서’에서 출발했다.
당시 송탄시와 미군은 이 지역 업소가 위생·의료·소방·안전 등 법령을 어겼을 때 미 사령관 직권으로 해당 업소에 미군의 출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기준을 담은 안내서를 만들었다.
A4용지 28장 분량의 안내서에는 모두 9개 항목에 걸쳐 ▲법시행과 위생기준 ▲군 공중위생표준 ▲화재예방 ▲균등기회 및 기회 ▲검열과 출입금치 절차를 담고 있다. 업소의 영업시간은 미군부대 사령관이 정하도록 되어 있고 업소 종업원 채용 시 증명사진과 신상카드를 부대에 제출하도록 하는 등 검열과 규제지침이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한 조항이 많을 뿐 아니라 미군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불평등 협약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안내서에는 ▲클럽 직원들의 명찰 색 ▲유리잔 소독 방법과 진열 규칙 ▲얼음 공급처와 사용방법 ▲화장실 청소 시 사용하는 소독액과 농도 기준 등 업소 운영의 세세한 부분까지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도록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클럽 입구에서 사람들이 서성대지 못하게 해야 한다거나 영업시간 중에 업주나 지배인은 즉시 연락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등의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내용이 상당수 담겨 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2005년 3월, 미군 소속 헌병들이 이와 같은 규정을 악용해 업소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고 성상납을 받는 등 비리사건이 발생해 오프리미트의 부당성이 널리 알려지고 사회적 비난이 일자 평택시는 안내서가 무효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미군은 여전히 오프리미트를 유지하고 있어 안내서 자체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윤현수 에바다장애인평생학습학교 교육처장은 “한국과 미국의 대표로 협상을 하려면 국내법의 근거나 상위 협정인 ‘한·미 행정협정’ 등의 위임을 받았어야 하지만 ‘한·미 행정협정’에는 지방자치단체나 그 누구에게도 위임해 이런 내용의 협약을 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며 “한국과 미국 간의 협정이나 각서 체결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단독으로 할 수 없고 다른 나라와 외교와 조약의 권한을 가진 외무부장관이 직접 나서거나 또는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외교사절로 임명을 받고 서명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1992년도의 안내서는 그 자체가 불법”이라고 말했다.

 
 

군사재판 받는 분위기에 주눅
신장쇼핑몰은 치외법권 지대?
SOFA 규정도 제대로 안 지켜져

업소의 위반사항을 심사하는 군기위원회도 공정성을 가지기 힘들다는 것이 상인들의 주장이다. 한국외국인관광시설협회 송탄지부 김동민 지부장은 “우리의 의견은 배제한 기지 측의 수사내용만 적용해 열리는 군기조정위원회는 시작부터 공정성이 결여된 것”이라며 “해명을 하러 들어가면 미군들만 쭉 앉아 있는 등 마치 군사재판을 받는 분위기여서 제대로 의견을 펼치기 어렵다는 것이 업주들의 공통된 견해”라고 말했다.
미군부대 영내는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 지대지만 부대 앞 신장쇼핑몰은 엄연한 한국 영토다. 한국 영토에서 벌어진 일을 한국 경찰이나 행정기관이 관여하지 못하고 미군이 자신들의 지역으로 불러들여 조사하고 처분을 내리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미군의 이러한 월권행위는 ‘SOFA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을 넘어서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소파 규정상 미군은 위급상황에 한국인을 체포했더라도 한국 경찰이 요구하는 즉시 신병을 인계해야 한다. 그러나 2012년 7월 5일 발생한 ‘미군수갑사건’ 당시 미군은 현장에 도착한 한국 경찰의 요구를 무시하고 한국인 신 모 씨를 미군부대 앞으로 끌고 갔다. 당시 신 모 씨는 “내가 미군에 끌려가는 동안 한국 경찰은 아무런 손을 쓰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한 바 있다.
김동민 지부장은 “미군에 대해 재판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국민에 대한 관리감독권도 미군에 넘겨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범법행위나 위반사항이 있으면 정당한 조사를 거쳐 한국법에 의한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미군들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것이 외국인관광시설협회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1년 이상 출입금지 업소도 있어
종업원 고용까지 맘대로 못해
위법행위 처벌은 한국의 권한

현재 정확한 미군의 오프리미트 적용 기준은 밝혀지고 있지 않다. 송탄 신장쇼핑몰에 입점한 한국인 상인들의 생존권은 미군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셈이다.
한국외국인관광시설협회 송탄지부 통계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 6월 현재까지 오프리미트 규정을 적용받아 영업에 직·간접인 타격을 받은 외국인전용 업소는 모두 43곳에 달한다.
2009년에는 종업원 관리소홀을 이유로 10개 업소가 경고조치를 받았으며 5개 업소가 25~172일 출입금지, 한 업소가 외국인 접대부 고용금지 조처를 받는 등 모두 16개 업소에 오프리미트 조치가 취해졌다.
2010년에는 역시 종업원관리소홀 명목으로 7개 업체가 오프리미트를 적용당해 2개 업소는 외국인 접대부 고용금지, 5개 업소에 96~325일 출입금지 조처가 취해졌다.
2011년에는 4건이 발생해 3개 업소가 종업원 관리소홀로 외국인 접대부 고용금지 2곳, 출입금지 152일 1곳 등의 처분을 받았으며 한 업소는 클럽 내에서 미군들끼리 싸움을 했다는 이유로 18일 간 출입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5건의 오프리미트 적용 사례가 발생해 종업원 관리소홀로 3월 6일과 8월 13일 출입금지 조처를 당한 두 업소는 지금까지 해제되지 않고 있는 상태며, 미군 병사 간 싸움으로 8일 출입금지 조치 한 곳, 종업원관리소홀로 외국인 접대부 고용금지 조처를 당한 곳이 두 곳 등이다.
2013년에 들어서 미군의 오프리미트 적용은 더욱 확대돼 6월 25일 현재 11개 업소에 고용금지나 출입금지 조치가 취해졌으며 이번 시위를 시작하면서 부터는 신장동 K-55 미군부대 앞 인근 상가에 대해 시위가 끝날 때까지 전면적으로 미군들의 출입금지가 내려져 있는 상태다.
한국외국인관광시설협회 송탄지부 김용태 상무는 “어떤 종업원을 고용할 것인지는 업주의 고유한 권한인데 미군 측에서 인력에 대한 문제까지 거론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간섭”이라며 “미군들끼리 싸우는 것을 말리려고 미군 몸에 손을 대면 자칫 폭행혐의를 덮어 쓸 우려가 있어 사실상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한 “미군들 중 미성년자가 있는데 인식표를 보고 술을 팔지 않아도 선임병과 함께 오는 경우 일일이 음주여부를 지켜보거나 말릴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인데 이러한 정황은 무시하고 자신들의 편의대로 규정을 적용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기홍 진보신당 평택안성당원협의회 위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오프리미트는 미군들의 자의적 해석에 근거한 것으로 명백한 주권침해 요소를 가지고 있는 잘못된 규정”이라며 “일각에서는 업소들의 부정·불법행위가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이는 사건의 본질을 벗어난 것으로 혐의가 있는 업소는 한국 행정기관이나 경찰이 철저한 수사를 해서 가려내고 처벌하면 될 일이지 미군이 나설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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