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도시 파티마

포르투칼 사람들은 3F를 사랑한다. 그것은 축구(Futbol), 전통음악 파두(Fado),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발현지인 파티마(Fatima)다. 이 세 가지의 내용과 포르투갈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해야 진심으로 포르투갈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 한국에서 라디오를 통해 우연히 들어보았던 파두음악을 오늘 리스보아에서 파티마로 오는 버스 안에서 집중적으로 들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아픔과 때로는 비장함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정서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파두 음악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즈(Amalia da Piedade Rebordao Rodrigues. 1920.7.23~1999.10.6)의 노래를 들어본다면 그 감동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포르투갈 정부는 3일간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니 그녀가 파두 음악에 끼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인 ‘검은 돛단배(Barco Negro, 1954년)’를 듣고 있으면 처음 파두를 접하는 사람들도 그 음악에 빠질 수밖에 없는 감동을 준다. 한국에 돌아가면 파두와 관련된 영화와 음악을 꼭 경험해 볼 계획이다.

파티마(Fatima)

 
파티마는 1년에 1000만 명이 방문하는 어머어마하게 큰 가톨릭 성지다. 리스보아에서 북동쪽으로 200㎞ 지점에 위치해 있는 작은 마을이었던 파티마는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어린 양을 돌보던 세 어린이 루치아(Lucia dos Santos)와 그 사촌남매 히야친타(Jacinta Marto, 1910~1920), 프란치스코(Francisco Marto, 1908~1919)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난 사건 이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순례자들로 붐비는 가톨릭 성지가 되었다. 마리아는 세 명의 어린 목동들에게 5개월 동안 나타나서 자기가 누구이며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세 가지의 중요한 비밀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 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1946년 교황이 인증함으로써 공식적인 성지가 되었다. 1928년에 바실리카가 건축되기 시작했고, 1953년에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65m 높이의 탑 위에 거대한 청동 왕관과 수정 십자가가 있으며, 정면에는 마리아가 나타난 장소에 작은 성당이 있는 거대한 광장이 있다. 또한 세 명의 목동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대성당이 있는데 세계에서 4번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파티마는 프랑스의 루르드(Lourdes)와 함께 성모 발현 2대 성지로 꼽히며 해마다 수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파티마의 넓은 성당 앞 광장을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서쪽에는 금성이, 남쪽에는 목성이, 동쪽에는 보름달이 빛나고 있다. 참 아름다운 광경이다. 특히 광장 서쪽에 약 30여m 높이로 세워진 나무십자가 위로 금성이 처연하게 빛나던 장면은 일행들 모두가 이번 여행 중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파티마 유적지 구석 구석을 둘러보았다. 전세계에서 온 순례자들이 곳곳에 경건하게 앉아 로사리오(Rosario, 묵주)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특히 광장 왼편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곳에 지어진 작은 기념 성당 안에는 다양한 인종의 순례자들이 계속 이어지는 미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성당 옆 벤치에 쉬고 있는 어느 젊은이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는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인 Murano(무라노)라는 23살의 대학생이었다. 그리고는 그와 함께 천천히 걸으며 조곤조곤 파티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다행히 그가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구사해서 나의 짧은 영어 대화도 불편함이 없었고, 카톨릭 교회가 고수하고 있는 교회의 역사적인 전통과 성경의 권위를 비슷하게 두는 부분이나, 마리아, 교황과 관련된 여러 관점들의 차이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특히 가톨릭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젊은 가톨릭 청년들의 신앙적 고민들과 개인적인 고민들을 듣게 된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유적지를 중심으로 수많은 가게들이 있어서 대부분 종교에 관련된 여러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고, 다양한 호텔과 호스텔 그리고 식당들도 많았다. 그간의 여행 경험으로 볼 때, 이런 곳일수록 늦은 밤까지 열린 가게들도 많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많기에 밤 10시 쯤 느긋하게 산책을 나섰다. 천천히 걸어도 1시간여 정도면 도심지 주요 부분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편의점 한 곳, 술집 한 곳 열려있는 곳이 없었다. 길거리에서도 전혀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고요한 도시, 밤 11시인데도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적막한 도시, 각종 성물(聖物)을 판매하는 가게의 진열대들만 빛을 발할 뿐 사람들은 사라진 도시, 낮 시간에 수 천 명이 과연 이 거리에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빠져 나간 도시였다. 간신히 자판기에서 생수 한 병을 사서 숙소로 돌아오면서 인간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했다. ‘인간’은 빠진 채 ‘형식과 권위’만 가득 차 있는 종교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한 사마리아인의 삶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파티마의 하늘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별들과 보름달이 빛나고 있었다.

다음 날,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7시간의 긴 버스 여정을 시작했다. 오늘은 포르투갈을 떠나 스페인으로 가게 된다. 전세계 콜크(Cork) 생산량의 절반을 책임지는 포르투갈답게 고속도로 주변은 온통 콜크나무 숲이다. 사실 콜크 생산은 긴 시간에 걸친 경제성 없는 작업이다. 30년 이상 자라야 비로소 쓸 만한 껍질을 채취할 수 있으며, 한번 벗겨내면 9년 이상을 또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요즘은 성능 좋고 저렴한 합성 콜크나 나사 마개가 대량으로 보급되는 상황이라 포르투갈 콜크 산업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5시간의 버스 여행이 이어지고 우리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국경을 넘어섰다. 버스는 멈추지도 않고 도로가에 간단하게 서 있는 국경 표지판을 무심하게 통과한다. 언어가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은 다르지만 이렇게 유럽은 이미 하나의 통화(通貨)로 통합되어 있었고 국경이 사라진지 오래이며 강력한 리더십을 국제 사회에서 행사하고 있다.


 
※ 이 글은 2012년 1월 6일부터 17일까지 대한민국 청소년 우수지도자로 선발되어 포르투갈, 모로코, 스페인, 네덜란드를 방문한 여행기다. 필자는 한광고등학교에서 22년간 윤리·종교를 가르치며, 대한민국 최우수 동아리인 한광무선국을 비롯해 5개의 동아리를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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