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힘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오면 바로 골목길에 모여서 놀았습니다. 딱지치기·구슬치기·사방치기·말뚝박기…
혼자 놀기를 즐겨하는 아이들은 혼자 산으로 들로 다니며 저수지에서 헤엄도 치고 왕잠자리를 잡으며 하루해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군사정부가 들어서며 먹는 입을 줄이겠다는 산아제한 정책으로 어느 사이에 한 집에 아이들은 한 두 명이 고작이었습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는 외롭지. 또 형제가 있어야 서로 양보하는 법도 배우고 형제우애도 알 것이고…
그래서 어느 가정이든 최소한 아이를 두 명은 낳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첫째가 딸인데 둘째가 아들이면 200점, 첫째가 아들이고 둘째가 딸이면 100점, 첫째가 딸인데 둘째가 또 딸이면 0점이란 유머가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습니다.
동네에서 딸부자네라고 부르는 인쇄소 집은 딸이 6명이나 되지만 기어이 아들을 낳아야겠다고 해서 결국 7번째 아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버스 타고 다니고 딸 잘 낳아놓으면 비행기 탄데요 라고들 해도
-나는 아들이 태워주는 리어카를 타는 한이 있어도 아들을 낳을 거요!
그래서 끝까지 아들을 고집하는 유교를 중심으로 한 아들 선호사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변함이 없습니다. 
50~60년대만 해도 어느 집이든 형제가 기본적으로 5명은 되었고 많은 집은 7~8명이나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많은 건 비단 집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학교에 가면 한 반에 보통 70명 가까운 아이들이 좁은 교실에서 ‘구더기’ 끌 듯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있는 종암국민학교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학생 수를 가진 학교로 기록되었습니다.
그 즈음 일입니다. 외국에서 아이들 교육을 위한 국제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각 나라 대표들은 모두 다 상대방 나라의 교육환경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나라 대표가 한국에서 온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한국은 초등학교 한 학급에 학생 수가 몇 명이나 됩니까?
-70명 정도입니다.
- … …
그랬더니 그 사람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더랍니다. 한 교실에 학생 수 70명이면 무슨 수로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겠는가! 하는 표정을 짓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교육환경은 전 세계에 유래가 없는 거의 야만인 수준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많았기에 아이들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무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어디에서든 관심 밖이어서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스스로 알아서 시간을 보냈고 그래서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부모나 형제가 아니라 바로 친구였지요. 그래서 아이들은 모든 고민도 부모나 선생님이 아닌 친구에게 털어놓곤 했지요. 그러면서 혼자 속앓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도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을까요? 게다가 부모는 무엇이든 못하게만 했습니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리고 오직 하라는 것은 단 한 가지 ‘공부’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 집안에 아이들도 적고 학교에 가도 아이들 수가 적기에 아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주변으로 부터 인정받는 것에 자연스러워 진 것 같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30평 아파트에 살며 자가용 차를 굴리고 사는 집에도 이제는 아이가 하나 뿐인 집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주변에는 형제가 없이 외톨박이로 사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함께 노는 법도 잘 알 지 못합니다.
국민 대다수가 벌집 같은 아파트에 살다보니 이제는 길에 나와 노는 아이들을 구경하기도 힘이 듭니다. 또 아이들은 예전처럼 서로 집을 오가며 놀지도 않습니다. 세상이 너무 험해져서 부모는 아이들이 다른 집에 놀러가는 것조차 꺼려해서 보내질 않습니다. 특히 여자아이들 경우에는 더 예민합니다.
선진국에서는 만 14살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를 혼자 집에 두면 부모가 처벌을 받는 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부모가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홈스쿨링’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주변관심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자기성장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어떻게 해서든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분별력과 사고력思考力을 길러야 할 것이지요. 그런데 예전 농경사회문화 시대에는 부모나 조부모가 알려주는 가르침만으로도 세상을 사는 일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오늘 자고나면 눈부시게 변하는 이 정보화시대에 조부모와 아이들 세대의 세대 간 격차나 부모세대와 아이들 세대의 세대 간 격차는 몇 십 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서로가 다른 별에 사는 것만큼 이해와 소통이 단절되어 있고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대적 상황은 눈 깜짝할 사이에 광속光速으로 변신의 변신을 거듭해가기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육시키는 일이 더 어렵고 힘든 점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오늘날을 사는 부모는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 능력대로 자기세계를 만들어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다른 어느 일 보다 소중한 역할이라 믿습니다. 먼저 길을 왔으니 거쳐 온 길을 되짚어 보며 아이들에게 길안내를 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기 능력을 잘 쓸 수 있도록 도와주면 그만큼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폭이 더 넓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입니다.
미래사회 사람이 힘입니다.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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