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전폭적인 지지로 성장해온 50년 역사 ‘평택여고 하키’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며 하키의 메카로 세계를 재패하다

▲ 창단 초기 하키부 선수들과 지도교사(1966년)
하키는 11명이 한 팀으로 구성돼 공을 드리블, 또는 패스해 상대방 골에 공을 넣는 경기다. 스틱으로 하는 운동이어서 많은 기술을 필요로 하며 허리를 구부린 낮은 상태에서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많고 공의 속도가 빨라 박진감 넘치는 운동경기이기도 하다.
전국에서도 하키의 메카라 불리는 평택의 하키는 평택여자고등학교를 뿌리로 성장했으며 현재도 평택여자고등학교는 전국대회에서 40여 차례 우승함은 물론 역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17명,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10명을 배출하는 등 여자 고등부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1962년 평택여상 한경우 교장이 창단
평택여자고등학교 하키부 창단에 관한 공식적인 기록은 1963년 4월 2일이라고 기록돼 있으나 선수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이보다 1년 빠른 1962년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평택여자상업고등학교는 평택여자중학교와 같은 교정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1962년에 우선 활동하게 하고 중학교 2학년이던 학생들을 추가로 선발해 이들이 추후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도록 했다.
하키라는 운동종목이 생소하던 당시 평택여자상업고등학교 한경우 교장은 아무것도 알릴 것이 없는 상업고등학교를 알릴 수 있는 것들을 찾던 중 누구도 하지 않았던 하키를 대표 운동종목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정지원은 물론이고 이렇다 할 인재도 없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하키는 한경우 교장이 기울인 각고의 노력으로 외국에서 스틱을 수입하고 학생들이 일일이 스틱에 실을 감아 흙바닥이던 운동장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한경우 교장은 이후 하키부원들을 위한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시합이 있을 때마다 한경우 교장은 한 번도 빠짐없이 하키부를 데리고 참석하는 열정도 마다하지 않았다. 초창기 중학교는 체육과목을 맡고 있던 장승만 선생과 하키를 전문적으로 배운 김수광 코치가 하키부를 맡아 지도했으며 고등학교는 최호섭 선생이 맡아 지도했다. 이들은 육상이나 운동을 잘 하는 학생은 미리 눈여겨 봐 두었다가 하키부원으로 끌어들여 인재를 양성했는데 스틱이 흉기로 인식되던 당시 여학생들이 하키를 한다는 것에 대해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도 선뜻 응하지 않았다 한다.
당시 중학교 하키부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는 정경례(65) 씨는 “당시에는 여자 아이들이 몽둥이(스틱) 같은 걸 들고 운동장을 뛰어다닌다는 것만으로도 인식이 좋을 수 없었던 때였어요. 당시에는 하키가 뭔지 그런 것조차 잘 몰랐던 때였으니 부모님이 허락하실 리가 없죠. 그래서 학교에서는 부원들을 모으기 위해 부모님을 찾아가 설득도 하고 참 애를 많이 썼어요”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애를 썼던 학교측의 열정 덕분에 선수층은 날로 두터워졌다. 부원들은 매일매일 안성 원곡까지 뛰며 체력훈련을 했으며 합숙은 교실에 책상을 붙여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자며 훈련했다. 그러나 먹고살기도 어려웠던 1960~70년대 당시에도 하키부원들은 학교 매점에서 이들을 위해 밥을 해주는 아주머니가 따로 있었을 정도로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이들이 합숙하며 먹을 식량을 대기 위해 전교생들은 의무적으로 집에서 편지봉투에 가득 쌀을 가져와 모으기도 했으며 농사짓는 부모님들은 반찬이나 고기 등을 학교로 가져와 제공하기도 했다. 

▲ 창단을 주도한 한경우 교장(뒷줄 우측 두번째)과 교사, 하키부 선수들(1969년)
▲ 대회 입상 후 하키부 선수들과 교장, 지도교사 기념촬영(1981년)

남학교 하키부와 연습 맞대결

하키는 대부분 잔디구장에서 경기가 이뤄지지만 평택여자고등학교 하키팀이 생긴 초창기만 해도 잔디구장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맨 흙바닥에서 공을 치고 달려야 했던 부원들은 무릎에 보호 장구를 차고 연습에 임해도 다치는 일이 많았다. 경기장비 전체를 수입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공이 사라지면 부원 전체가 찾으러 다녀야 했고 스틱은 바닥이 닳도록 썼다.
하키부는 1975년에 잠시 해체됐다가 1979년에 다시 재 창단했다. 1975년 공식 대회에 출전했던 지방의 모 팀들이 경기 도중 스틱을 휘두르며 싸우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고 난 뒤 평택여자고등학교 하키부도 잠정해체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국적으로도 많지 않던 하키부는 그때 대부분 사라졌고 재 창단 했을 당시에는 전국에 각 도를 대표하는 한 팀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었으며 경기도에는 평택여자고등학교 하키팀이 유일했다.
평택에는 평택고등학교 하키부도 10여 년간 활동했다. 평택고등학교 하키부는 1981년 창단했는데 팀 성적이 생각보다 저조해 1991년 해체됐다. 원정경기가 사실상 어려웠던 평택고등학교 하키부원들은 가까이에 있었던 평택여자고등학교 하키부원들과 주로 연습게임을 벌였다. 평택여자고등학교 하키부원들의 실력이 아무리 좋다고는 하나 남자들과 대결하기란 힘에서 밀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연습 파트너를 구하기 어려웠던 여자부원들은 거친 남자 부원들을 상대하며 연습에 몰두해야 했다.
이 같은 일은 평택여자고등학교 하키부원들에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시너지 효과를 안겨주었다. 유럽 경기에 나가 힘 좋은 서양선수들과 싸워야 할 때도 전혀 밀리지 않는 체력을 기르게 됐던 것이다. 반면 평택고등학교 부원들은 여자 부원들이 연습상대는 될 수 있었으나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발판은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도 팀의 해체 원인 중 하나가 됐을 것이라고 당시 하키 부원들은 증언하고 있다.
평택여자고등학교 하키부는 1983년 ‘한국전기통신공사 100주년 기념 전국하키대회’에 출전, 우승해 100만 원이라는 상금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 선생님들이 대부분 대회를 보러 와서 이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평택여자고등학교는 1984년부터 학교 선생님들과 부원들을 1:1로 연결해 멘토와 멘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참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의 여고생들은 감정의 기복도 심하고 때로 좌절했을 때 누군가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멘토가 된 선생님들은 자신의 멘티가 된 하키부 학생에게 대회 나갈 때마다 용돈을 주고 먹을 것을 사주기도 했으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상담도 하는 등 학생들의 마음까지 세세하게 신경써주는 역할을 했다.
비인기 스포츠 종목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스포츠 종목이었지만 평택여자고등학교 내에서는 이들을 위한 최대한의 배려를 통해 경기에 나갈 때마다 우승을 휩쓸어 위세를 떨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줬다. 하키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다시 붐을 일으켜 전국적으로 팀 수가 늘어나게 됐다.

中-高校-실업팀까지 연대
평택여자고등학교 하키부가 대회에 나갈 경우 타 지역 팀들이 조 편성을 할 때 평택여자고등학교 하키부만 피할 수 있으면 “신 내림 한 것”이라는 우스개 말이 나돌기도 했다. 그만큼 평택여자고등학교 하키부는 전국적으로도 실력을 인정받는 무서운 팀이었다.
평택여자고등학교 하키부출신 선수로는 현 아시아하키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신정희 선수와 KT 코치로 활약했던 노영미 선수 등이 있으며 수많은 선수들이 전국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선배들이 전국적으로 활약하다 보니 자연히 후배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쳐 후배들을 이끌어주고 있으며 KT에서는 평택여자고등학교 출신 선수들을 해마다 최소한 한명씩은 입단시키고 있다.
평택의 하키부는 평택여자중학교·평택여자고등학교·평택시청 실업팀으로 연계돼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 현재 실업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18명의 선수 가운데 11명이 평택여자고등학교 하키부에서 활동하던 선수들이다. 역대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선수는 19명이며 역대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만도 13명에 달한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은메달 임향신·서광미·최은옥·한옥경,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금메달 서광미·한옥경·최춘옥·서효선·박순자·정은경·한동혜,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 노영미·유제숙·조은정·김명옥·이은영, 1998년 북경아시안게임 금메달 노영미·유제숙·김명옥·이은영·김성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은메달 이은영·김성은·김윤미·박정숙·조진주 등 평택여자고등학교 출신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해 메달을 딴 선수만 해도 상당수에 이를 만큼 탄탄한 선수진을 갖고 있다.
2013년 현재 평택여자고등학교는 이 학교 출신인 인정의 교장의 지원 아래 연종철 감독과 박정숙 코치가 지도하고 있으며 2013년 10월 창단 50주년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 전국대회 우승에 감격해 포옹하는 선수들(1985년 8월 17일)
▲ 한국전기통신공사 100주년 기념 전국고교하키대회 우승(1985년 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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